매일신문

[야고부] 지박령(地縛靈)

서종철 논설위원
서종철 논설위원

독일의 대학 진학률은 예상만큼 높지 않다. OECD 통계를 보면 약 33% 수준이다. 한 해 고교 졸업생 셋 중 하나만 대학 문턱을 넘는다. OECD 평균인 47%에 한참 못 미치는 수치다. 한국과 비교해도 크게 차이가 난다. 직업교육을 중시하면서 일찌감치 김나지움(8~9년제 인문계)과 레알슐레(6년제 실업계), 하웁트슐레(5년제 기술인 양성학교) 등 진로를 나누는 독일 교육제도가 그 배경이다.

현재 370개가 넘는 독일의 대학은 대부분 국립이다. 대학도 공교육을 적용해 200만 명의 대학생 중 2%인 사립대학을 빼고 등록금을 내지 않는다. 학생 1명당 교육 경비가 7천유로에 가깝자 한때 일부 대학이 장기간 재학하는 학생에게 최대 500유로의 수업료를 부과하기도 했다. 그러다 2014년부터 다시 등록금을 완전히 폐지했다. 독일의 대학은 재학 기간 제한 없이 거의 무료로 다니는 청년 보금자리나 다름없다.

물론 부작용도 많다. 너무 늦은 나이에 사회에 나간다는 점이 가장 크다. 대학 졸업자 평균 나이가 근 29세다. 군 복무(1년)에다 학사 관리가 까다로워 졸업이 쉽지 않은 점도 원인이다. 하지만 주거와 의료보험, 교통비 등 대학생 신분 혜택이 많아 졸업을 미루는 게 주된 이유다. 한때 '직업이 대학생'이라는 말도 나돌 만큼 사회 이슈가 됐다.

요즘 우리의 대학도 '장기 대학생'이 크게 느는 추세다. 졸업 요건을 다 갖췄지만 여전히 대학을 계속 다니는 부류다. 원해서 대학생 신분을 갖는 게 아니라 취업이 안 돼 못 떠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을 이른바 '캠퍼스 지박령(地縛靈)'이라고 부른다. '땅에 얽매인 영혼'이라는 뜻이다. 교육부 자료를 보면 졸업유예제도를 실시하는 4년제 대학 108곳의 1만2천여 명이 졸업을 미룬 채 대학에 남아 있다.

일부 대학은 추가 학비를 내야 재학생 신분을 주는 등 갈수록 이들을 보는 시선도 곱지 않다. 원해서 그냥 대학을 다니는 독일에 비해 어쩔 수 없이 장기 대학생 신분이 된 한국 대학생들의 처지가 안타깝다. 앞길이 구만리인 이들에게 우리 사회가 용기를 주고 성원할 필요가 있다. 정작 본인들은 얼마나 속이 타고 자괴감이 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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