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권영재의 대구음악유사]빨간 마후라

요새 대구출신 대학생들 서울 가서 옳게 하숙방이나 구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는 대학시험장에 와서 아직 시험도 치지 않는 경상도 학생들에게 합격되면 자기 집에 가정교사로 들어와 달라고 전화번호 주고 간 서울 마나님들도 있었다. 유신시절에는 중앙청 앞에 경상도 말 학원이 있다고 했다. 부산말보다 대구 말 강의료가 더 비싸다는 소문도 있었다.

한국전쟁 당시 북한에게 모든 땅을 다 빼기고 경상도만 남았다. 앞에는 대구가 싸우고 뒤에는 부산이 물자를 대고 있었다. 정부가 일본으로 도망간다는 말도 나돌았다. 민족 최악의 비극적인 상황에서도 경상도 사람 욕하는 사람 하나 없었다. 피난민들에게 저도 못 살면서 그래도 현지주민이랍시고 된장도 퍼주고 보리쌀도 나눠주는 우직한 경상도 인간들이 좋았던 모양이다. 60년 2월 11일 '경상도 사나이'라는 영화가 개봉이 되었다.(민경식 감독, 조미령, 방수일, 이대엽 주연). 같은 무렵 '경상도 사나이'(김성근 작곡, 최시주 작사, 남백송 노래)와 '경상도 아가씨'(이재호 작곡, 손로원 작사, 박재홍 노래)라는 노래도 나온다.

 

52년 1월 15일 U.N공군들이 36차례나 출격하였으나 실패를 거듭하던 평양외곽에 있는 승호리 철교를 대한민국 공군들이 통쾌하게 폭파한다. 중국에서 북한으로 오는 온갖 군수물자와 생필품을 운반하는 생명줄 역할을 하는 곳이 승호리 철교였다. 공군은 4천피트 고도에서 급강하여 적의 대공포화를 피하며 1천500피트 초 저공에서 폭탄을 투하하였다. 작전을 위해 F-51전폭기 2개의 편대가 출격했다. 제1편대에는 윤응렬 대위, 정주량 대위, 장성태 대위가 타고 있었고 제2편대에는 옥만호 대위, 유치곤 대위, 박재호 대위가 타고 있었다. 제 1편대가 적의 극렬한 대공포화로 실패를 하고 제2편대가 급강하며 집중 공격한 로켓탄에 승호리 철교는 맥없이 무너져 버렸다. 제2편대 유치곤이 대구사람이다.

지금까지 대구 사람이 영화 내용의 주인공이고, 노래의 주인공이 된 사람은 유치곤 밖에 없다. 64년 신상옥 감독이 유치곤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 '빨간 마후라'를 제작한다. 주제가 빨간 마후라는 황문평이 작곡하고 한운사가 작사하고 봉봉 사중창단이 노래를 불렀다. 유치곤은 당시 출격 100회를 달성한 39명의 조종사가 되고 53년 5월 30일에는 한국공군 역사상 유일한 200회 출격의 기록을 세우고 전쟁 중에는 203회의 최대 출격 기록을 세운다. 27년 대구 달성군 유가면 쌍계리에서 출생한 유장군은 51년에 공군소위가 되어 한국전쟁 중 승호리 철교 외에도 평양대공습, 351고지 탈환, 송림 제철소 폭파 등의 영웅으로 활약을 하며 전쟁을 치른다. 65년 1월 1일 공군 제107기지 단장으로 재직 중 과로로 순직하며 준장의 추서되었다. 그는 조국을 위해 산화하였지만 그는 고향땅 비슬산 휴양림인 유가면 양리에서 조국을 지키고 있다. 유치곤 장군 호국기념관에 그의 모든 것이 소장되어 있다.

피난 왔던 사람에게도 인심을 잃지 않았던 경상도 사람들, 영화의 영웅이 되고 노래의 주인공이 되던 대구 사나이. 온 국민들이 좋아했던 사람들이 어느 때 부터인가 싫어한다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서울 가면 친한 나의 선후배들이 면전에서 노골적으로 '대구사람 싫다'고 한다. 대구 학생들 하숙집 제대로 구하고 있는지 매우 걱정된다.

전 대구적십자병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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