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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병석 대구중학교 교장의 애틋한 그리움이 담긴 시집

‘그때는 당신이 계셨고, 지금은 내가 있습니다’

그때는 당신이 계셨고, 지금은 내가 있습니다/ 전병석 지음/ 어른의 시간 펴냄

전병석 대구중학교 교장

저자의 어머니와 가족에 대한 애틋함과 그리움을 담아낸 시집이다. 전병석(사진) 대구중학교 교장은 3부 86편 시를 통해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아련한 기억들과 아내에 대한 사랑, 중년의 단상 등을 시어로 표현했다.

저자로부터 추천받은 3편의 시를 소개한다. 첫번째 시는 제목부터 예사롭지 않다.

#1. '역모'

"내일이면 엄마는 퇴원한다/ 형제들이 모였다 엄마를 누가 모실까/ 아무도 나서는 사람이 없다/ 큰형이 무겁게 열었다 요양원에 모시자/ 밀랍처럼 마음들이 녹는다/ 그렇게 모의하고 있을 때 병원에 있던 작은 형수 전화가 숨 넘어간다/ 어머님 상태가 갑자기 나빠지고 있다며…/ 퇴원 후를 걱정하던 바로 그 밤/ 자식들 역모를 눈치챘을까 서둘러 당신은 하늘길 떠나셨다"

전병석 대구중학교 교장

부모는 자식이 고려장을 시키려 지게에 싣고, 산을 올라갈 때도 자식이 길을 잃을까 나뭇가지를 꺾어놓는다고 하지 않았던가. 부모의 마음, 특히 어머니의 마음이 그런가보다. 자식은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 피눈물을 토하고 후회해도 이미 세상에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서 부모는 그리움이자 애틋함이다.

#2. '권태기'

"토요일 오후 아내가 물회가 먹고 싶다며 포항에 가자고 하였다/ 나는 물회도 별로고 운전도 싫어 핑계를 대었다/ 아, 아내를 사랑하지 않는구나/ 가슴이 철렁하여 프로야구가 없는 토요일 오후/ 아내와 포항물회를 먹었다"

이 시도 무심하게 넘기기 쉽지만 아내에 대한 남편의 미안한 마음을 일화를 통해 담담하게 표현했다. 이 시를 본 많은 남편들도 아내에 대한 사랑을 한번씩은 체크하게끔 만든다"

#3. '중년의 꿈'

"아이들이 돌아간 텅 빈 운동장/ 중년의 사내들이 공보다 큰 배를 흔들며 축구를 한다/ 한 번은 뻐엉 골망을 흔들고 싶었던/ 어렵게 얻은 찬스는 왼발에 걸려들어 헛발질이다/ 축구처럼 인생도 맨날 헛발질이다/ 그래도 제대로 오른발에 걸려들 한방 찬스를 기다리며/ 아이들이 돌아간 텅 빈 운동장/ 중년의 사내들이 공보다 큰 배를 흔들며 축구를 한다"

이 시는 중년의 허탈한 현실과 마음만은 항상 청춘임을 잘 그려냈다. '인생도 맨날 헛발질'이라는 표현이 많은 중년들의 마음에 와닿는다.

'살아생전 효도하라'. 부모는 자식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이 시집은 쓴 저자의 메시지다. 매일신문 DB

이 시집에 대해 박상률 시인은 "전병석의 시들을 '존재 자체만으로도 힘이 되는 이들에게 바치는 노래 모음'이라고 정의"하고 "시인은 '존재만으로 힘이 되는 대상'의 맨 위에 어머니를 올리고 있다"고 평가했다. 젊은 날의 어머니부터 돌아가시던 순간, 돌아가신 뒤 시인이 기억하고 느끼는 어머니에 대한 마음을 노래함으로써 이 시대 노인들의 보편적 삶을 풀어냈다.

중반부에서 작가는 때로 상처를 안겨주지만, 결국은 운명이고 사랑인 아내와 자식들에게도 따뜻한 시선을 보낸다. 가족에 대한 단상이 끝나면 '그때의 어머니'처럼 나이 들어가는 자신의 모습을 돌아본다. 작가의 시들은 특별한 시적 장치를 사용하지 않고서도, 삶에 대한 따뜻함과 그리움의 마음을 담담하게 담아내 독자들에게 큰 울림을 준다. 155쪽, 9천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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