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부인과 의사의 가장 중요한 책무 중 하나는 임신과 출산 과정에 의학적 전문지식을 활용하여 여성들이 원하는 시기에 원하는 자녀를 임신하여 건강한 아이를 출산하고, 산모도 건강한 모습으로 가정과 사회에 복귀하는 것을 도우는 역할이다. 특히 고위험 산모의 임신과 출산 과정은 산모 본인뿐만 아니라 의료인도 굉장한 수고가 필요하다. 하지만 산부인과 의사는 이런 과정을 통해 많은 보람과 직업적 자부심을 느끼며 고생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러나 산부인과 의사가 평생을 두고 고민하는 문제 중 하나는 합법적이든 비합법적이든 임신중절(낙태) 수술과 관련된 문제다. 임신중절 수술은 태아 상태나 산모의 건강 등 여러 가지 원인과 이유로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의료 행위이나 의사의 부담은 항상 존재한다.
최근 보건복지부가 낙태 수술을 비도덕적 진료행위로 규정하고, 낙태 수술한 의사의 자격을 1개월 정지하는 행정규칙 시행을 공포하자 산부인과 의사들이 "낙태수술을 거부할 것"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보건복지부의 이런 조치로 한동안 잠잠하던 낙태 허용과 금지에 관한 우리사회의 오래된 찬반논쟁이 다시 재현되고 있다.
종교계를 중심으로 낙태 반대 단체는 '태아에게도 생명권이 인정된다'며 낙태 증가를 막기 위해 형사처벌이 불가피하는 입장이다. 반면 여성단체를 중심으로 낙태를 찬성하는 쪽은 '임신 중단 전면 합법화 촉구 집회'를 열고 의료 관련 행정처분 개정안 철회를 요구한다. 특히 낙태의 주체는 여성이어야 하고 여성만 처벌하고 상대 남성은 처벌하지 않는 것은 횡포라고 주장한다.
우리 형법은 낙태 행위를 전면·일률적으로 금지·처벌하고 있다. 다만, '모자보건법'은 본인 및 배우자가 일정한 우생학적·유전학적 정신장애·신체질환이 있는 경우, 본인·배우자가 일정한 전염성 질환이 있는 경우, 강간·준강간으로 임신된 경우, 법률상 혼인할 수 없는 혈족·인척 간 임신된 경우, 임신의 지속이 보건 의학적 이유로 모체의 건강을 심각하게 해치고 있거나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낙태를 허용하고 있다. 즉 현실적으로 낙태 사유 중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사회 경제적 사유'나 '임신부가 원하는 경우'는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낙태와 관련된 우리나라의 법은 다른 선진국에 비해 매우 엄격하다. 37개국 OECD 회원국 중 '사회 경제적 사유'로 낙태를 인정하는 국가는 미국, 영국, 일본 등을 포함하여 30개국이며 불법으로 금지하는 국가는 대한민국, 아일랜드, 폴란드 등 7개국이다. '임산부의 요청'에 따라 낙태를 인정하는 국가는 독일, 프랑스, 호주 등 27개국이며 불법으로 금지하는 국가는 대한민국, 영국, 일본 등 10개국이다.
조만간 헌법재판소가 낙태죄 위헌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사문화된 낙태죄의 폐지를 요구하는 여성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대조적으로 태아 생명 보호를 위해 현행법은 유지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들끓는다. 사회적으로 민감한 사안인 만큼, 차후 헌재의 결정에 국민들의 눈과 귀가 쏠리고 있다.
고석봉 대구가톨릭대병원 산부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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