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한국국학진흥원 김미영 박사의 추석 차례상 차리기 제안

‘화려한’ 추석 차례상? 특별한 규정 없어“…가족과 함께 쉬며 즐기길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고 표현되는 풍성하고 넉넉한 추석(24일)이 얼마 남지 않았다. 추석 하면 떠오르는 것은 차례다. 믿는 종교에 따라 차례를 지내지 않기도 하지만, 아직도 많은 집안에서는 차례를 지낸다. 문제는 차례상이다. 어동육서(魚東肉西:생선은 동쪽, 고기는 서쪽), 조율이시(棗栗梨枾:대추·밤·배·감의 차례대로 놓기), 홍동백서(紅東白西:붉은 과일은 동쪽 흰 과일은 서쪽) 등등. 집안마다 차이는 있지만 수십 가지의 음식을 차려야 한다. 음식 장만하는데만 하루가 모자랄 정도다. 전통대로 차려야 할 것인지, 아니면 변화를 줘도 괜찮은지 상차림에 대해 알아봤다.

음력 9월 9일 중구절에 차례를 지내는 하회마을 풍산 류씨 종가의 추석 차례상. 여느 집안의 추석상에 비해 간소하다.김미영 박사 제공
음력 9월 9일 중구절에 차례를 지내는 하회마을 풍산 류씨 종가의 추석 차례상. 여느 집안의 추석상에 비해 간소하다.김미영 박사 제공

◆차례상, 지방·가문마다 달라
차례(茶禮)와 제사(祭祀)는 다르다. 차례는 설이나 명절을 맞아 돌아가신 조상을 공경하는 의식으로 차(茶)를 올리는 예다. 주자가례에 따르면 차례는 제사가 아니라 보름에 올리는 일종의 의식으로 사당에서 향을 피우고 차를 올렸다. 하지만 차는 중국의 전통으로 우리는 차 대신 설에는 떡국, 추석에는 송편을 올렸다.
제사는 돌아가신 조상을 기리며 생전의 효를 이어가기 위해 치르는 의식이다. 조선시대에는 특히 효를 중요시한 만큼 몇몇 예법서에서도 제사의 형식과 진행방법, 상차림 규정 등에 대해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차례상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없다.

전통있는 가문이 많은 안동 지역 유명 종가의 추석 차례상은 송편과 함께 고기, 과일 등 간소하게 차린다. 제사상처럼 밥과 국, 전, 나물 등은 차리지 않는다. 차례도 추석날이 아닌 음력 9월 9일 중구절에 지내는 종가가 많다.

차례상 차리는 것이 확립된 것은 1960년대 이후다. 한국국학진흥원 수석연구위원 김미영 박사는 "1950, 6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 마을에 살았기 때문에 가장 앞선 문중의 종손 집에서 먼저 지내고 순서대로 돌아가는데 별 문제는 없었다. 그런데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말손'인 사람들이 독립했으니 추석에는 차례를 지내야 할 것 같은데 어떻게 제사를 지내는지 몰랐다. 그런 가운데 언론에서 앞다퉈 '차례상 차리는 법' 식의 보도를 했고, 그 과정에서 몇몇 가문에 내려오는 가례가 표준처럼 퍼져 전국화되었다"면서 "현재 차례상은 만들어진 가짜 전통"이라고 했다.
김 박사는 차례상은 '가가례'(家家禮)라고 해서 지방과 가문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기 때문에 형식과 절차에 지나치게 얽매이기보다는 기본적인 원칙은 지키되 정성껏 올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김 박사는 "따라서 추석 차례상에서는 밥과 국을 송편으로 대신해도 되고, 조기나 탕, 포 등 번거로운 음식은 생략하더라도 예의에 어긋나지 않는다. 과일 역시 제철에 나는 몇 가지만 준비하면 충분하다"며 "그래야만 자손들이 미풍양속인 설·추석 차례를 이어가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 모두가 즐거운 명절…화목이 중요
김 박사는 차례의 본질과 우리 문화의 정체성을 지켜가되 현대에 맞는 적절한 형식으로 변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시대가 변해 핵가족, 1인 가정 등이 늘고, 차례를 지내야 하는 공간도 대부분이 아파트가 됐고, 여행하는 사람이 많은 만큼 음식 준비에 신경 쓰기보다는 나의 뿌리를 되돌아보면서 효를 실천한다는 의미를 되새기는 게 중요하다"는 지적했다. 무엇보다 화목한 분위기 속에서 휴식을 즐기고, 가족 구성원 간의 많은 대화를 나누는 것이 조상 대대로 내려온 명절의 원래 모습이라는 것이다. "정해진 원칙에 지나치게 얽매이기보다는 조상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간소하게 준비하고, 무엇보다 가족 간의 화목을 위해 가정이 처한 상황에 맞게 가족끼리 합의하고 그에 따르면 될 것"이라고 했다.

김 박사는 "만약 집에서 기제사를 지내지 않는다면 명절 차례를 기제사처럼 지내면 되고, 기제사를 지내고 있다면 명절 차례를 간단하게 하고 대신 가족들의 모였기 때문에 별도로 먹는 음식을 마련하는게 좋은 것"이란 의견을 제시했다. 명절 차례는 제사 형태로 지내는게 당연시되고 있는 현실을 조금만 고치면 명절병의 주 원인도 치유할 수 있다는 것.
김 박사는 "차례는 각 가정 형편에 맞게 지내면 되는 것이다. 가족 간의 갈등이 일어났을 경우에는 의논해서 더 바람직한 방향으로 서로 조율해서 맞춰가는게 좋을 것"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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