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풍] 정치 실험 공화국

조향래 논설위원
조향래 논설위원

한반도는 혹독한 식민 지배를 겪었다. 그리고 분단이 되었다. 북에는 공산 정권이 3대 세습을 실험하고 있고, 남에서는 자본주의 체제의 영욕을 체험하고 있다. 한국이 자유민주주의 틀을 갖춘 것은 초대 이승만 대통령의 덕분임을 부인할 수 없다. 그래서 건국 대통령이라고도 부른다. 제1공화국은 순항하지 못했다. 사사오입 개헌과 3·15 부정선거를 자행하다가 4·19 혁명으로 몰락했다. 이승만은 6·25전쟁의 참화를 겪으며 한미동맹을 구축했으나 친일파를 청산하지 못해 민족정기를 왜곡시켰다.

자유당 독재를 무너뜨린 혁명의 열기는 의원내각제라는 권력분산형 정치 구조를 형성시켰다. 제2공화국이다. 그런데 장면 총리와 윤보선 대통령 간 신·구파 정쟁에다 데모로 날밤을 지새우는 혼란이 5·16 군사정변을 초래했다. 군부 엘리트에 의한 제3공화국의 등장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18년간 집권했다. '한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비약적인 경제 성장을 이루어냈으나, 민주주의 가치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공존한다.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대통령을 뽑던 8, 9대를 제4공화국이라 부른다. 대통령이 초법적 권한을 지닌 유신체제였다.

10·26의 총성으로 박정희 정권이 비극적 종말을 고하자, 최규하 대통령이 잠시 무대에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숨은 실력자는 12·12 쿠데타로 등장한 신군부의 전두환 대통령이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무력으로 진압하고 제5공화국을 출범시킨 그는 폭정과 부패의 대명사로 꼽힌다. '체육관 선거'를 통해 7년 단임의 12대 대통령으로 등극한 그는 삼청교육과 언론 통폐합을 강행하며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했다. 그러나 6월 민주항쟁에 따른 6·29선언으로 5년 단임제의 대통령 직선제로 선회한다. 노태우 대통령의 제6공화국은 사실상 군부 정권의 연장이었다. 육사 친구였던 두 권력자는 내란 및 부패 혐의로 나란히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초유의 일이었다.

1993년에 출범한 김영삼 대통령은 '문민 정부'를 자칭했다. 역사 바로 세우기와 함께 지방자치제와 금융실명제를 도입했다. 하지만 IMF 구제금융이라는 전대미문의 경제 위기를 초래했다. 뒤를 이은 김대중 대통령은 '국민의 정부'를 표방했다. 여야 간 첫 평화적 정권 교체였다. 호남의 정치적인 한을 승화시키는 계기도 되었다. 민주화의 양대 산맥인 상도동계와 동교동계의 보스였던 YS와 DJ, 정치 9단의 의회 정치인도 노벨평화상을 받은 진보 대통령도 아들의 비리사건에서는 자유롭지 못했다.

인권변호사 출신인 노무현 대통령은 '참여 정부'를 내세웠다. '서민 대통령'으로 권위주의 타파와 과거 청산에 나섰지만, 퇴임 후 본인과 가족에 대한 수사의 칼날을 피하지 못한 채 투신 자살이라는 비극의 주인공이 되고 말았다. 10년 좌파 정권의 막을 내린 이명박 경제대통령도 부패 혐의로 감옥에 가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박정희의 딸이라는 프리미엄과 더불어 최초의 여성 대통령으로 국민적인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최순실 게이트로 국정 농단을 초래하며 헌정 사상 처음으로 재임 중 탄핵으로 쫓겨난 대통령이 되었다.

촛불시위로 탄생한 문재인 정권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내로남불'의 적폐 청산과 조급한 남북 화해…. 만약 문재인 정부가 또 실패로 막을 내린다면, 이젠 어떤 막장 드라마가 대한민국 정치 무대에 올라올까. 산전수전 다 겪은 국민에게 아직도 남은 정치 실험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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