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똑똑한 협상가

박병선 논설위원
박병선 논설위원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지칭할 때마다 빠지지 않는 단어가 있다. 바로 '똑똑함'(smart)이다.

지난 5월 CBS 방송에 출연해 '아주 똑똑한 녀석'이라고 했고, 6월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에서는 면전에서 '똑똑한 협상가'라고 치켜세웠다. 7월 영국 신문과의 인터뷰에서도 "김 위원장은 매우 똑똑하고 멋진 인물"이라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을 놓고 수도 없이 '똑똑하다'고 평했으니 단순한 '외교적 수사'나 '공치사'는 아닐 것이다.

김 위원장이 올 초 북핵 협상에 나서자마자 한국은 물론이고 미국, 중국마저 그의 '똑똑함'에 휘둘리고 있는 모습이다. 미국은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북한과의 협상에 마지못해 응하면서 불쾌감을 참고 있고, 중국은 전례없이 북한과의 신뢰 구축에 열과 성을 다하고 있다.

한국은 이번 평양 남북 정상회담을 위해 '올인'하는 듯한 자세를 보이고 있으니 대등한 '협상 파트너'가 될 수 없다. 김 위원장의 똑똑함을 뒷받침하는 것은 북한의 뛰어난 외교·교섭 능력이다. 탈북한 태영호 전 공사는 "'벼랑 끝 외교'라는 표현이 상징하듯 기본적으로 생존을 위한 외교여서 절박하다. 외교 라인이 오래 근무해 전문성을 가진 것도 강점"이라고 했다.

남북 간에는 '형님이 양보할 수밖에 없는' 특수한 전통이 있긴 하지만, 김 위원장의 협상 능력에 말려들지 않을까 우려하는 시선이 여전히 많다. 문재인 대통령이 회담 성과를 내기 위해선 어린아이 대하듯 '어르고 달래는' 방법 외에는 없다. 비핵화 협상은 진척되기 어려울 것이 뻔해 국내 여론의 향배가 어찌 될지 알 수 없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회고록 '운명이다'에서 2007년 남북회담 전후의 어려움을 이렇게 털어놨다. "북한이나 미국보다 더 버거운 상대가 국내 여론이었다. 한국의 보수 신문들은 미국 네오콘보다 더 강경했고, 한나라당은 한술 더 떠 대통령을 압박했다"고 했다.

국민 모두 남북 간에 증오와 대결주의를 끝내길 바란다. 그렇더라도, '일방적인 양보'는 곤란하다. 김 위원장의 똑똑함을 이길 수 있는 지혜를 발휘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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