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정달해의 엔터인사이트]

‘손 the guest’ 오랜만의 안방극장 오컬트

여름이 끝나고 가을로 접어드는 시기, 오랜만에 안방극장용 공포물이 등장해 마니아들을 열광하게 만들고 있다. 꽤나 촘촘한 완성도로 방송을 시작한 이후 입소문이 퍼져나가고 있는 드라마, OCN 수목극 '손 the guest'다. 심령, 악마, 주술과 구마의식 등 초자연적 현상을 소재로 한 오컬트 드라마다. 최근 2년 여 기간에 걸쳐 영화 '곡성' '검은 사제들'이 호평을 들으며 흥행에 성공한 뒤 국내 콘텐트 시장에도 이 장르의 수요층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사실이 증명된 상태다. 다만, 소재의 특성상 TV용 콘텐트로 제작한다는 데에 한계가 뚜렷하다는 단점이 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지금 '손 the guest'를 주목할 만한 콘텐트라고 부르는 건 공포물이 가진 이 장르적 한계를 극복하고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손 the guest'

# 몰입도 높은 전개로 강한 인상

글을 시작하면서부터 꽤나 칭찬을 늘어놨는데, 그만큼 이 드라마가 가진 희소성의 가치가 뚜렷하기 때문이다. 물론, 방영 초기 단계인데다 시청률이나 화제성이 어느 정도까지 올라갈지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과찬을 한 것이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국내 TV 콘텐트 제작자들이 꺼리는 장르를 건드려 임팩트 강한 내용물로 만들어낸 대담함, 자칫 리스크로 작용할 수 있는 요소들을 끌어안고 정면돌파한 추진력에 높은 점수를 주지 않을 수 없다.

말 그대로 이 드라마는 한국형 오컬트(초자연적인 소재를 다룬 영화)를 표방하며 무속신앙과 가톨릭의 구마의식 등을 소재로 다룬다. 영매와 사제, 형사 등 세 명의 주요 캐릭터들이 악령에 맞서는 과정을 보여준다. 각 캐릭터들은 어린 시절 악령에 의해 진로를 바꿀 정도로 초자연적 현상에 대한 남다른 경험을 가지고 있으며 성인이 된 후 다시 만나 같은 목적 하에 손을 잡게 된다. 영화 '신과 함께' 시리즈로 주가를 높인 김동욱이 영매 윤화평 역을, 섹시한 매력의 김재욱이 구마사제 최윤을 연기한다. 저돌적인 형사 강길영 역은 정은채가 맡았다. 수작으로 호평 받은 드라마 '보이스' 시즌1의 김홍선 PD가 연출자로 나섰다.

'손 the guest'

1회에서는 주요 캐릭터들의 과거를 보여줬다. 그 중 어린 시절 무속인 집안에서 영매 기질을 가지고 태어난 윤화평의 어린 시절을 주로 다뤘다. 이 과정에서 무속인의 굿판, 귀신에 빙의된 이들이 살인을 저지르고 또 죽어가는 과정 등이 자세히 그려졌다. 특히 극중 '주적'으로 부각되어야 할 악령의 존재감을 보여주기 위해 TV 드라마로선 꽤나 수위 높은 묘사가 이뤄져 심야시간 시청자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손 the guest'

그 수위 높은 묘사 때문에 TV드라마로선 부적합하지 않느냐는 말이 나올 정도였으니, 사실 이 드라마는 필연적으로 리스크를 온 몸으로 감싸 안고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회 방영 후 실제로 '드라마치고 너무 수위가 높아 무섭다' 또는 '기분 나쁠 정도로 음울하다' 등의 시청자 반응이 나오기도 했다. 나름 전문가들로부터 내용이 훌륭하다는 칭찬을 받는다고 해도 다수 시청자들로부터 이런 부정적 반응을 얻는다면 결국 시장 파악에 실패한 콘텐츠로 불릴 수밖에 없다.

그런데 다행히도 2회까지 방영된 후 상황은 긍정적으로 바뀌었다. 단순히 공포심리만 자극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볼거리와 재미를 갖춘, 완성도 높은 오락물이란 호평이 나오기 시작했다. 성인이 된 주요 캐릭터들이 한 자리에 모이고 본격적인 에피소드가 진행되면서 이 드라마의 성격도 분명해졌다. 그저 무섭고 기분 나쁜 드라마가 아니라 결말이 궁금해지는 스토리와매력적인 캐릭터들이 있는, 볼만한 콘텐츠란 사실이 명확해졌다.

'손 the guest'

다양한 성격의 캐릭터들로 다양한 성별과 연령대를 사로잡는 전략도 유효했다. 김동욱은 마음속에 큰 짐을 끌어안은 채 애써 태평한 듯한 이미지로 살아가는 인물을 능글능글하게 연기했고, 깔끔한 외모의 김재욱은 어린 시절 겪은 아픔을 간직한 채 차갑고 싸늘한 성격의 구마사제로 변해 김동욱과 충돌하며 재미를 줬다. 김동욱이 남자 시청자들에게 어필한다면 김재욱은 공포물에 거부감을 느낄 수 있는 여자 시청자들을 끌어당기는 역할을 한다. 여기에 다혈질의 형사로 분한 정은채가 두 남자 사이에서 현실적인 캐릭터를 보여주며 밸런스를 맞췄다.

# 'M' 명성 이어가는 호러 드라마 될까

전개 역시 '미드'(미국드라마)를 떠올리게 할 정도로 속도감 넘치고 강렬했다. 1회에 비해 직접적으로 공포심리를 자극하는 요소를 줄였고, 대신 시청자들의 호기심을 충족시켜주는 구마의식과 액션을 가미해 재미를 줬다. 주요 캐릭터들의 이미지가 시청자들에 각인됐고 드라마의 성격도 제대로 알렸으니 이제부터는 차근차근 에피소드를 풀어나갈 일만 남았다. 시작 단계에서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 건 아니고 또 tvN이 아닌 OCN에서 방영되고 있으며, 장르적 특성 때문에 흔히 말하는 '대박'을 터트리기가 쉽지는 않을 듯하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전국 시청률 5%대의 벽을 깬다면 딱 그 정도만으로 이 드라마는 충분히 가치는 증명되는 셈이다.

'손 the guest'에 앞서 국내 TV 드라마 중 호러 장르를 택해 성공한 대표적인 예는 'M'과 '전설의 고향'이다. 설화와 민담 등을 다룬 '전설의 고향'은 회차별 소재에 따라 극의 분위기가 매번 바뀌었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귀신 설화를 자주 다뤄 호응을 얻었다. 온 가족이 이불을 뒤집어 쓴 채 '전설의 고향'이 보여주는 귀신 이야기에 집중하던 80년대 가정의 풍경은 7080세대들의 뇌리에 강하게 남아있는 향수다. 1977년에 시작돼 1989년까지 12년에 걸쳐 장수했으며 1996년에 한 차례, 또 2008년과 2009년에도 여러 편을 제작해 '납량특집' 등의 개념으로 '무서운 이야기' 위주로 방송한 적이 있다.

'손 the guest'

'M'은 90년대 톱스타 심은하를 주연배우로 기용해 빅히트작 대열에 오른 드라마다. 8부작으로 기획됐다가 반응이 뜨거워 연장됐으며 10회 분량으로 종영됐다. 악령과 빙의 등 오컬트적 요소를 가져왔으며 여기에 무분별한 낙태 등 사회적 문제의식을 투영해 크게 화제가 됐다. 파란 색으로 변하는 심은하의 눈과 섬뜩한 OST 등 그 시절에는 듣고 본 적 없었던 다양한 요소들이 새롭게 도입돼 이목을 집중시켰다. 40%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기록했던 히트작이다.

'M'의 성공 이후 호러 드라마가 종종 나오긴 했지만 그 만큼이나 성공한 작품은 없었다. 대부분 아류작이란 말을 듣는 데 그쳤고 완성도 면에서 호평을 받더라도 이 장르의 마니아들이 열광하는 수준에만 머물렀다. 공포물이라는 장르적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던 것이 패인이다. 공포심리를 자극하면서도 폭넓은 층의 시청자들을 끌어올 수 있는 매력을 갖춰야하는데 대개 이 부분이 미흡했다.

'미드' 중에서는 '마스터즈 오브 호러' '킹덤 호스피탈' 등 공포물을 표방하면서도 매 시즌을 이어가며 인기를 얻는 작품들이 많은 편이다, 성공요인은 결국 매력적인 캐릭터와 확장 가능한 스토리다. '손 the guest'는 '미드'의 성공사례를 벤치마킹해 시청자들을 잡아끌 수 있을만한 캐릭터와 스토리를 선보이고 있다. 혹 용두사미로 끝난다 하더라도 이번 시도는 국내 드라마의 장르 범위를 확장하고 다양성 확보를 위한 활로를 개척했다는 차원에서 박수를 쳐줄 만 하다.

정달해(대중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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