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이 또 여행꾼들의 글에 오르내리고 있다. 뭘 먹어도 맛있을, 궁극의 표현력 덕분에 올해 초 안동 식당가가 바글거렸다면 이번엔 드라마 덕분이다. 일본어 대사가 워낙 많아 일본드라마로 오해받기 쉽지만 엄연한 국내 드라마인, tvN 주말드라마 '미스터션샤인'이다.
빅데이터도 입증했다. '미스터션샤인'의 배경인 고산정과 만휴정은 7월 이후 검색량에서 안동 주요 관광지 중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여름 휴가철을 전후로 고산정, 만휴정이 북적이기 시작했다니 영상 콘텐츠의 위력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君の名は)' 제작 지원에 나섰던 일본 기후현이 영화 흥행에 비례해 관광객 몰이에 성공했다는 사례를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잘 키운 콘텐츠 하나 열 축제 안 부럽다'는 구호는 유효하다.
'너의 이름은'의 배경에는 기후현 곳곳이 담겼고 마니아층은 기후현 이곳저곳을 성지처럼 찾아다녔다. 공짜 티켓 남발해서 사람들 끌어 모으는 축제를 할 게 아니라는 걸 기후현은 진작 알았던 것이다. 축제란 무엇인가.

'미스터션샤인' 2화에 등장한 고산정 주변은 '홍파'라는 주모가 운영하는 주막과 나루터의 배경이었다. 국밥을 말아, 간혹 욕설을 넣어가며, 던지듯 국밥을 내오던 기존 주모의 이미지와 판이한 홍파(서유정이 맡은 역할)보다 강렬했던 건 닭백숙을 하염없이 쳐다보던 유진(이병헌이 맡은 역할)이었다.
태어나서 처음 먹어보는 음식을 눈앞에 두고 어떻게 먹을지 모를 때, 맛집에서 뭘 주문해야할지 모를 때, 통칭 '잘 모를 때'. 우리는 본능적으로 '다수의 행동, 선택'을 따르는 경향이 있다. 속칭 '눈팅'이다. '주류에 편승하는 것'이다.
너무도 가보고 싶은 곳이 생겼는데 잘 모를 때도 마찬가지다. 다수의 행동은 참고 사항이다. 영상에서 본 장면이 컴퓨터그래픽인지 실제인지 혼동이 올 만큼 '그곳'이 끌린다면. 태어나서 처음 가보는 곳이라면.

◆만화에서나 튀어나올 법한 휴식처, 만휴정
"전신에 다리 우에 서가지고 사진 찍는데 얼마나들 오는지 주말에는 주차장에 차를 못 대. 그 전에도 찍으러 좀 오긴 했는데 이번에는 훨씬 더 많아. 오는 건 좋은데 제발 쓰레기는 좀 갖고 갔으면 좋겠어. 담배꽁초가 그래 많이 나와."
대부분 연인들이 찾아오며 반드시 만휴정으로 이어지는 다리 중간에 서서 사진을 찍고 간다. 대박은 아니지만 중박 정도는 쳤다는 영화와 드라마 촬영지로 간택됐던 만휴정이라 해도 이번만큼 유명세를 치르진 못했다. 오는 이들마다 쓰레기를 특히 담배꽁초를 방문 기념 인증하듯 남기고 떠나니 치우기 힘들다, 라고 78세의 안동 김 씨 집안 며느리는 전했다. 여름철 휴가시즌, 드라마 인기에 맞춰 방문객이 늘었다고 했다. 그때는 가물어 물이 적었지만 한 달 사이 태풍과 집중호우 덕에 풍경이 바뀌었다.
드라마에서는 도공 황은산(김갑수가 맡은 역할)의 집이자 작업장이자 도자기 판매장이자 의병들의 비밀아지트로 소개됐다. 가마터도 갖춘 걸로 나왔지만 실제 가마터가 있을 리 없다. 드라마 촬영을 위한 것이었고 지금은 흔적도 없다. 만휴정은 엄연한 국가지정 문화재인 '명승'이다. (간혹 개념없이 이곳에서 삼겹살을 구워먹는 이들이 목격되곤 했다는데 적발시 실명 공개, 삼겹살 구입 금지, 문화재 교육 50시간 이수 등 실질적 교화 방안이 추진될 만하나 독백으로 처리하는 걸로)

송암폭포와 만휴정을 렌즈에 담아보겠노라고 기어이 아래로 내려가려는 이들이 있을 거라 장담할 수 있어 노파심에 전하는데 두 피사체는 한 프레임에 담기기는 하나 맨눈으로 본 것보다 적잖이 못하다. 생고생하지 마시라. 기술 부족일지 모르나 경험담이다.
기왕지사 만휴정이 어떤 곳인지는 알고 가야할 터. 조선전기 문신 김계행이 말년을 보내기 위해 지은 곳이다. 만휴정 아래 너럭바위에 새겨진 '보백당만휴정천석(寶白堂晩休亭泉石)'란 글귀를 보며 '한시(漢詩)네, 아니네' 다투기도 하는데 굳이 그럴 것까지 없다. 김계행 선생의 호인 '보백당'의 만휴정에 있는 '샘(물)'과 '돌' 정도가 된다. 선생이 직접 새긴 것이라 한다.
도공 황은산의 집(만휴정)으로 가기 전 출입국검사소처럼 거쳐야 하는 주막과 나루터도 안동에서 촬영했다. 나루터에서 강만 건너면 만휴정이 나와야할 것 같지만 천만에. 두 곳은 자동차로 1시간 넘게 떨어져 있다. 안동 땅이 둥그스름하니 시침과 분침으로 두 곳의 위치를 표시하자면 4시 정각이다.

◆'도깨비'도 찍으려 했다는 그곳
나루터 건너편 선명하게 보이던 정자는 만휴정이 아니라 고산정이다. 주막과 나루터가 있던 곳은 도산면이다. 만휴정이 있던 길안면이 거의 청송이라면 도산면은 사실상 봉화군이다.
독특하게 반듯해 존재감 갑인 청량산 축융봉이 어렴풋이나마 보이면 도산에 왔다는 뜻이다. 안동시내에서도 50분 거리다. 고속도로 북대구IC~남안동IC 구간보다 오래 걸린다. 행정구역상 안동이다. 그런데 도산서원, 퇴계태실, 이육사문학관, 농암종택 등 알토란같은 관광지가 몰려있다.
고산정은 래프팅으로 유명한 봉화 이나리강의 끝, 그러니까 낙동강 상류에 있다. 예전에는 농암종택이 이 부근 대표 콘텐츠였다. 올 여름부터 '고산정'이 대표 콘텐츠 반열에 이름을 얹었다.
이곳을 찾은 이들은 나루터와 나룻배를 그렇게들 찾는다는데 만휴정 가마터처럼 역시나 드라마를 위한 장치였다. 주막은 현재 맹개마을 '소목화당'이라는 곳에 다시 설치돼 있다. 고산정에서 하류로 좀더 내려가면 나오는 곳이다. 역시나 나룻배는 없다. 원래 배로 건너던 곳은 아니었기에.

혹여 인근에 와서 인정사정상 반드시 물을 건너야겠다는 이들을 위해 맹개마을 관계자가 대형 트랙터나 사륜구동 자동차를 몰고 마중 나온다. 사전 연락(010-2524-8717)은 필수다. 혹시나 연락이 안 된다면 키 175cm 기준 무릎 이상의 최대 수심, 50미터 폭의 강을 스스로 건너야 한다. 갈수기에는 수심이 얕아진다는 점, 겨울에는 꽁꽁 얼어 그냥 건널 수 있다는 점 참고하자.
이 주변은 예전부터 풍광이 좋아 한 번 와 본 사람은 오래 기억하던 곳이었다. 주변 메밀밭이 봄에는 푸른색으로, 초가을에는 하얀색으로 절경을 뽐낸다. 실은 이 마을 사람들, '도깨비'의 주요 장면을 찍으러 이응복 감독이 이곳을 찾았을 때 촬영을 거부했다고 한다. 유명 감독인지 몰랐다는데 '도깨비' 흥행 이후 두고두고 후회했다고 한다.

이곳이 유독 멋스럽다 싶은 이유가 있었는데 '퇴계예던길'의 일부다. 퇴계가 청량산으로 가면서 쉬었다 시를 읊었다는 곳이다. 안동의 대표시인 안상학은 이곳을 '마음의 안식처'로 꼽기도 했다.
맹개마을에서 남쪽으로 걸어내려가면 도산서원으로 연결된다. 이육사의 시, '절정'의 시상지인 칼선대로 이어지는 물길이 '퇴계예던길'과 사이좋게 걷는다.
이 모든 절경을 한 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지점이 있는데 '학소대'라는 곳이다. 농암종택 인근에 학소대로 오르는 길이 있다. 30분 정도의 산길 오르막을 각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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