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청라언덕] 지방소멸과 청년마을

최두성 경북부 차장
최두성 경북부 차장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이번 추석 연휴, 차례를 지내고 성묘를 하고자 고향을 찾은 자식·친지들을 맞은 촌로(村老)가 간절한 바람을 담아 읊조린 말이 아니었을까.

원래 이 말은 배곯던 시절, 일 년에 단 한 번 풍성하게 차려진 차례상 덕분에 배불리 먹을 수 있음을 감사한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뜨거운 여름을 보낸 과일들이 익어 제맛을 내고, 들판의 곡식들을 수확해 곳간을 채우니 추석은 풍성함의 대명사였다.

조선 순조 때 사람, 김매순이 열양, 즉 한양의 연중행사를 편찬한 세시풍속 자료집 '열양세시기'에 8월 중추는 추석의 넉넉함을 설명하고 있다.

"가위란 명칭은 신라에서 비롯됐다. 이달에는 만물이 다 성숙하고 중추는 또한 가절이라 하므로 민간에서는 이날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아무리 가난한 벽촌의 집안에서도 예에 따라 모두 쌀로 술을 빚고 닭을 잡아 찬도 만들며, 또 온갖 과일을 풍성하게 차려놓는다. 그래서 더도 말도 덜도 말고 늘 한가위 같기만 바란다."

주린 배 걱정을 않게 된 요즘, 되레 기름진 음식에 불어날 체중을 염려하게 됐으니 이제 이 말은 촌로의 읊조림처럼, 명절이 돼야 '사람 구경'할 수 있는 시골 마을, 지방자치단체의 기도문으로 더 어울릴 듯하다.

심각해지는 저출산·고령화 문제는 시골 마을, 더 나아가 '지방'이라 불리는 울타리가 사라지게 될 것임을 경고하고 있다.

전망은 무시무시하다.

한국고용정보원의 '한국의 지방소멸 2018' 보고서는 저출산에 따른 인구 감소로 30년 안에 전국 시·군·구 10곳 중 4곳이 소멸위험에 처했다고 진단했다. 전국 228개 시·군·구 가운데 89개 지역이 해당됐다. 특히 의성·군위·청송·영양군은 소멸 고위험지역으로, 안동·영주·영천·상주·문경·영덕·청도·고령·성주·예천·봉화·울진·울릉 등 13개 시·군은 소멸 진입지역으로 분류했다. 경주·김천시가 올해 추가돼 경북에서만 19개 지역에 '경고등'이 켜졌다.

지난해 4월 국토연구원이 인구주택총조사 자료를 토대로 발표한 '저성장 시대의 축소도시 실태와 정책방안' 보고서 역시 지방소멸을 기정 사실화하고 있다. 특별·광역시를 제외한 전국의 도시 가운데 최근 20년(1995~2015년)간 연속해서 인구가 감소하고 또 최근 40년(1975~2015년)간 정점 대비 인구가 25% 감소한 20곳의 지방 중·소도시를 '축소도시'로 분류했는데 경북에서 7곳이 포함됐다.

경북에서는 지난해 신생아가 한 명도 태어나지 않은 읍·면·동이 김천 증산, 안동 녹전, 영주 평은, 영덕 축산 등 4곳에 이르기도 했다.

존립 기반이 송두리째 무너질 처지에 놓인 경북도는 인구 구성의 체질 개선을 통해 길을 찾고자 지난 20일 '이웃사촌 청년 시범 마을' 기본 구상안을 내놨다. 일자리·주거·복지체계가 갖춰진 청년마을 조성이 골자다. 지방소멸지수 1위 기초 지방자치단체인 의성군이 그 대상지로 사업은 내년부터 시작된다. 도는 이 프로젝트가 '청년유입→지역 활성화→지방소멸 극복'이라는 선순환 구조의 모델이 되길 기대하며 1천700억원의 예산을 쏟아붓는다.

부디 고식지계(姑息之計)가 아니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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