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고] 필리핀의 희망, 애국 조회

조규택 계명문화대 교수

조규택 계명문화대 교수
조규택 계명문화대 교수

지난여름 필리핀 동 네그로 지역(Negros Oriental Division)의 주도인 두마게티 근처 한 초등학교에서 약 2주간 노동과 교육 봉사활동을 수행했다. 필리핀은 오랜 기간 스페인의 식민지였고 미국의 통치를 받았으며, 제2차 대전 때는 일본의 침략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6·25전쟁이 발발했을 때는 유엔군으로 참전한 16개국의 일원이었다. 그만큼 자유 우방으로서 높은 의식을 가졌고, 경제적인 여유도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의 필리핀을 보면서 70여 년 전 우리를 도왔던 그 나라가 맞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수도 마닐라를 비롯한 필리핀의 전체를 보지는 못했지만 산업시설을 거의 볼 수 없었고 도청 소재지 규모가 우리나라 소도시 정도였다. 경운기 수준의 탈것에서 최고급 세단에 이르는 자동차들이 거리를 달리지만 매연을 걱정하거나 단속할 여력이 없어 보였다.

주민들의 생활상은 천태만상으로 빈부의 격차가 지나쳤다. 으리으리한 대저택은 3m 정도의 높은 담으로 둘러 있지만, 코코넛 잎이나 대나무로 지어진 허름한 민가에선 텔레비전은 고사하고 선풍기조차 없었다. 게다가 노동으로 돈을 벌 수 있는 일터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원자재에 비해 가장 싼 것이 인건비였으며, 종일 일을 해서 버는 돈이라야 우리의 시급에도 미치지 못했다.

그럼에도 필리핀의 희망을 학교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소위 '애국 조회'란 전체 모임을 통해 매일 아침 교사와 학생들은 정규 수업 전에 국민체조와 같은 몸풀기와 나라를 생각하는 의식을 수행한다. 내가 초등학교 때 경험했던 전교생 조회와 같은 것이었다.

우리도 30~40여 년 전, 전체 조회를 통해 교장 선생님의 훈화를 듣기도 하고 운동장에서 국민체조를 했다. 국가 정체성을 담은 국민교육헌장을 맹목적으로 외웠지만, 철이 들면서 그 내용을 온전히 이해하고 실천하고자 애썼던 기억이 새롭다.

또한 틈만 나면 축구나 달리기를 하거나 철봉이나 미끄럼틀 같은 기구를 이용하면서 신체를 단련했는데 필리핀 초등학생들이 그런 활동을 하고 있었다. 건강한 신체에 건전한 정신이 깃든다고 본다.

지금 필리핀이 비록 가난하고 어려운 경제상황에 처해있지만 그들의 애국 조회를 보면서 곧 크게 발전할 것이란 느낌이 들었다. 무엇보다 1억 명이 넘는 인적 자원이 필리핀의 미래 자산일 것이다.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중등과정을 4년에서 6년으로 확대하면서 교육의 밀도를 높였고, 대학 진학률은 65% 이상으로 매우 높은 편이다.

나는 25명 전후로 이루어진 학급에서 한글 교육을 했다. 학생들은 영어와 따갈로그어, 그리고 지역 방언을 동시에 사용해서인지 상대적으로 언어 감각이 뛰어났다. 1시간의 한글 교육으로 자음과 모음을 읽고 쓰고, 각자의 이름을 한글로 쓰는 학생들의 놀라운 이해력을 통해 필리핀의 밝은 미래를 보게 되었다. 봉사활동을 통해 확인한 애국 조회와 교육에 대한 관심도가 필리핀 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할 것임을 확신하면서 우리나라 어린이들도 몸과 마음을 더 튼튼히 하고 나라를 생각하고 사랑하는 애국정신을 키웠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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