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지상갤러리] 이명미 개 드로잉

<1>이명미 작 '개 드로잉'

화가가 뜬금없는 작품을 보여주니까, 나도 뜬금없는 이야기부터 먼저. 이제는 꽤나 알려진 일화가 되었는데, 독일 작곡가 카를하인츠 슈톡하우젠이 했던 발언이 있다. 그는 9.11 테러가 벌어진 후 그 사건에 관해서 괜한 말을 했다가 곤욕을 겪어야 했다. 뭔가 하면, 인질을 태운 여객기가 무역센터 빌딩에 부딪히는 장면을 두고, '여태껏 볼 수 없었던, 하늘과 땅을 무대로 한 최고의 예술 작품'이라는 말이었다. 이전부터 슈톡하우젠은 미국의 패권주의가 품은 부당함을 비판해 왔다는 점에서, 그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이해는 된다. 하지만 부적절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더 많았다. 예술가는 자신의 견해를 말로 펼치는 게 아니라 작품으로 말해야 한다. 말은 보통 사람들도 할 수 있지만, 작품은 아무나 할 수 없다.

이명미가 대구예술발전소에서 선보이는 이번 전시는 최근 미술계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몇몇 소란에 본인까지 엮였다고 판단한 심정을 표현했다. 오늘의 이명미 작가가 있기까지 시그니처로 떠오른 요소들이 전시 공간 곳곳에 숨어있다. 이를테면 그녀가 쓰는 선명하고 낙천적인 물감의 색이다. 그리고 이 작품이 눈에 띤다. 캔버스 대신 종이에 그림을 그려 액자에 넣은 드로잉 작업이다. 물감은 아크릴이다. 아크릴은 물기가 빨리 마른다. 짧은 시간 내에 속히 그려야 된다는 말이다. 그래서인지 이 드로잉 작업은 낙서 같이 보인다. 낙서답게 속도를 붙여 그린 듯한 개가 있고, 욕설이 쓰여 있다. 아, 욕이 아닐 수도 있다. 본인이 그린 개(dog)를 개와 같다고 붙인 설명일 수도 있겠다.

중고등학교 국어시간에 배웠던 기호학을 떠올리자. 기호는 기표와 기의로 나누어진다. 기표는 글자를 구성하는 문법이고, 기의는 뜻이다. 알기 쉬우라고 든 예가 개다. 개는 기호의 표시는 한글 자모음이나 알파벳으로 가능하다. 그런데 그 문자 기호의 뜻은 개라는 네 발 달린 짐승 개로만 묶이지 않는다. 작가는 자신을 둘러싼 상황을 기의에 빗대었다. 이번 전시에 한정지어 욕쟁이 할머니라고 불려도 할 말 없을 것 같은 작가는 욕을 실은 음성과 발언과 표정 대신 텍스트와 도상을 배치한다. 글자와 형태와 색은 뭉쳐서, 때로는 흩어져서 공간 속에 긴장감을 빚어낸다. 이번 전시는 작가 이명미를 모르는 사람이나 잘 아는 사람이나 간에 굉장히 특별하게 다가온다. 이 또한 그녀가 걷는 길이다. 그 길을 걸을 때엔 맑은 날이 있고 흐린 날이 있다. 오르막이 있고 내리막도 있을 것이다. 작가는 이전부터 자신의 회화 속에 통속적인 가요의 소절을 따서 맥락을 살린 시도를 곧잘 해왔다. 작가는 윤종신이 작곡하고 본인과 정인이 불렀던 '오르막길'을 들어봤을까? 가사는 이렇게 시작된다. "이제부터 웃음기 사라질거야/가파른 이 길을 좀 봐/ 그래 오르기 전에 미소를 기억해두자."

윤규홍 (갤러리 분도 아트디렉터'예술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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