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명절 연휴 마지막 날 저녁 무렵이었다. 어정어정 휴일 다 보내고 나니 급기야 남은 시간이 아쉬워서 영화관을 찾았다. 몇 안 되는 관객들 사이에서 본 것은 동화작가 타샤 튜더의 삶을 그린 다큐멘터리였다. 타샤 튜더라는 이름은 낯설어도 막상 이 사람의 책이나 그림을 보면 대개는 아하, 알 것 같다고 할 만큼 널리 알려진 작가이다.
타샤 튜더는 그림책의 노벨상이라는 미국 칼데콧 상을 두 번이나 받은 인물로서, 70년 동안 100권이 넘는 그림책을 내놨다. '비밀의 화원' '소공녀'의 삽화를 그렸고 '코기빌 마을축제' 등 코기빌 시리즈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백악관 크리스마스카드 그림도 유명하다. 살던 곳을 떠나 버몬트주 산골에 30만평 땅을 사들였을 때 이미 쉰 중반의 나이였다. 그리고 30여 년 동안 온갖 꽃들이 흐드러진 정원을 정성껏 가꿈으로써 '천상의 화원'을 얻었다. 겨울, 봄, 여름, 가을…, 사계절 매력적인 타샤의 정원이 스크린에 펼쳐졌다. 정원뿐인가. 옛날 방식으로 양초를 만들어 쓰는 모습, 품안에 비둘기를 넣어 기르고, 인형을 만들고, 볕 좋은 자리에 앉아 차를 마시는 일상의 여러 모습이 흥미진진했다. 10년 전쯤 생을 마쳤으니, 동시대를 산 것과 진배없는데 평범한 우리네 모습과는 자못 달랐다.
놀라운 것은, 영화에서 만난 그의 나이가 아흔이라는 점. 할머니 타샤는 카메라 너머의 나를 향하는 듯 지긋한 눈길을 보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꽃들을 보면 행복한지 아닌지 알 수 있다." 그러니, 행복하지 않다면 사는 장소를 옮겨줘야 하며, 당신도 좋아하지 않는 곳에 산다면 어서 떠나라는 말이다. "인생은 너무 짧다." 즐기라고,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말한다. "예스, 예스 해놓고는 내식대로 했다." 이래라저래라 하는 세상 사람들의 훈수를 밀쳐두고 자신의 주관대로 살라는 충고다. 우리 식으로 치면 조선시대 여인 같은 차림으로 곱게 웃으며 이토록 진보적이고 분명한 조언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다니. 결국 우리가 원하는 것은 행복이라는 '천금같은' 메시지를 반복해서 전하며, 인생은 짧으니 시간을 '천금처럼' 소중하게 쓰라는 말이겠다.
타인의 삶을 통해 스스로를 살피니, 나는 무엇을 위해서 사는지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터덜터덜 갔다가 잰걸음으로 돌아오니 막 새 날이 시작될 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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