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신화의 세계' 편에서 몽당빗자루에 얽힌 가정의 신화를 이야기하면서 우리나라에도 인간과 세계의 존재를 설명하는 창세 신화가 있다는 간단한 언급을 한 적이 있다. 사람들은 우리나라에도 창세 신화가 있다는 것에 대해 의아해하는데, 그 이유가 우리나라의 창세 신화는 주로 서사 무가(巫歌)의 형태로 전해져 오기 때문일 것이다. 서사 무가는 무당들이 자기가 모시는 신들의 내력을 노래의 형태로 부른 것이다. 이야기를 전승할 수 있는 종교 집단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역사나 국어 교과에서도 가르치지 않으니 낯선 것은 당연한 일이다.
창세 신화로 가장 유명한 것은 함경도 함흥의 김쌍돌이라는 무녀가 구연한 것을 민속학자 손진태가 채록한 것이다. 그 내용을 보면 하늘과 땅이 분리되지 않았을 때 미륵이 태어난다. 하늘과 땅 사이에 틈이 생기자 미륵은 하늘을 솥뚜껑처럼 들고 땅의 네 귀퉁이에 구리 기둥을 세워 하늘과 땅을 만든다.
그때는 해도 둘, 달도 둘이었는데, 달 하나로는 북두칠성, 남두칠성을 만들고, 해 하나로는 별들을 만들었다. 미륵이 불이 필요해 쥐에게 불을 만드는 방법을 물었는데, 쥐는 세상의 뒤주를 차지하는 것을 보장받고 불을 만드는 방법을 일러준다.
미륵이 금쟁반과 은쟁반을 들고 하늘에 기원을 하니 하늘에서 각각 다섯 마리 벌레가 쟁반에 떨어진다. 금쟁반의 벌레는 남자가 되고, 은쟁반의 벌레는 여자가 되어 인간 세상을 이루게 된다. 미륵이 인간 세상을 다스리고 있을 때, 석가가 나타나 자신의 세월이 왔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내기를 제안한다. 두 번의 내기에서 모두 진 석가는 마지막으로 자는 동안에 무릎에 모란꽃을 피우는 내기를 하게 된다. 미륵이 자면서 무릎에 꽃을 피우자 석가는 먼저 깨어 그 꽃을 꺾어 자기 무릎에 꽂는 꼼수를 써서 이긴다.
미륵은 석가에게 세월을 넘겨주면서 석가의 세월이 되면 집집마다 솟대가 서고 기생, 과부, 백정, 역적 등이 생겨나고 삼천 명의 중이 생겨날 것이라고 예언을 한다. 미륵의 예언은 실현되고 미륵은 세상에서 사라진다.
이 이야기는 다른 무가에서 '소별왕 대별왕' 이야기로 이어지는데, 하나하나 뜯어보면 흥미로운 상징들로 가득 차 있다. 태초의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미륵도 기원하는 대상이 있다는 것과 건국 신화처럼 신성한 이야기가 아니라 석가가 부정한 방법으로 세상을 지배한다는 점도 특이하다. 우리의 창세 신화는 신을 증명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대신 우리가 사는 세상이 완전한 세계가 아니라 선과 악이 공존하는 불완전한 세계라는 인식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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