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고] 대구 종로의 야산 이달 선생 석비

청고 이응문 동방문화진흥회장(대연학당 대표)

청고 이응문 동방문화진흥회장
청고 이응문 동방문화진흥회장

지난달, 대구 근대골목거리를 대표하는 중구 종로 49-5(풍류골목 '피어나길')에 야산(也山) 이달(李達· 889~1958) 선생의 학문과 정신을 기리는 뜻깊은 석비가 세워졌다.

지난달 21일에는 풍류골목 '피어나길' 개막 행사가 종로골목 '무아' 주차장에서 성황리에 열렸다.

근대 일제의 만행에 국채보상운동으로 저항한 의기(義妓)들을 추모하는 정자, 전통과 현대가 조화된 식당과 주점들이 함께 어우러져 대구의 새 관광 명소로 각광받는 종로의 중심 골목이다.

세인들이 '주역의 달인(達人)' '역학의 종장(宗匠)'으로 일컬은 야산이 태어난 곳은 김천의 구성상원(龜城上院)이다. 야산은 서경 홍범(洪範)과 역경(易經)에서 이름을 딴 홍역학(洪易學)을 제창했다. 유학의 근원이 태극의 음양오행에 바탕을 두었다고 봤기 때문이다.

야산은 양력과 음력의 장점을 수용한 주역 책력인 경원력(庚元歷·1944)을 창제했다. 지구의 공전 주기인 6주(周), 360역(易)을 기본 바탕으로 한 과학적인 실용 책력으로, 경원(庚元)의 경(庚)은 미래를 여는 후천을 뜻한다. 달력(태음태양력)이 세상에 전해진 이래 주역 원리로 역법을 고정(考定)한 이는 야산이 유일하다. 세상을 떠나기 1년 전에 남긴 대학착간고정(大學錯簡考正·1957)도 야산이 남긴 불세출의 역작이다. 유학의 관문인 어긋난 '대학'의 글 순서를 완벽히 바로잡아 놓았기 때문이다.

종로골목의 중앙 거석에는 대둔산 석천암(石泉庵)에서 108 제자를 양성할 당시 홍역학의 취지를 쓴 333자의 부문(敷文)이 새겨져 있고, 대학의 착간을 마친 후 감회를 읊은 시비가 있다.

"건곤개합종방편(乾坤開闔從方便) 묘재기신갑재경(妙在其神甲在庚) 강령덕지어선(綱領德之止於善) 조목물내급어평(條目物乃及於平)."

해석을 하면, 방편 따라 여닫는 천지건곤의 신묘함이 갑(씨앗)이 경(열매)으로 바뀜이며, 대학의 공부 목적인 3강령(명명덕·친민·지어지선)과 실천 단계인 8조목(격물치지성의정심 수신제가치국평천하)과 상통한다는 뜻이다.

천지인(3재)이 열리는 3변 과정을 거쳐 8괘를 펼치는 태극의 도를 동방의 삼팔목도(三八木道)로도 일컫는데, 무궁화 태극기로 상징되는 대한민국이 3천리 8도 강산이다.
그 뒤에는 "무사설야월(無思雪夜月) 무위조창생(無爲照蒼生)".

이 10자 한자는 "티 없이 깨끗한 설야의 달빛이 세상을 비추듯이 진실한 마음으로 백성(국민)을 도우라"는 시문이 있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대구경북에 첫 도지사가 취임할 당시, 축하연에 초대받은 야산 이달 선생이 써준 축시로 전한다. 이 시문에 감동한 관응(觀應·전 직지사 조실) 스님이 불교 법회에서 소개하면서 알려진 시이다.

대구의 관광 1번지, 종로 근대골목에서 야산 이달 선생의 석비를 보고, 그 의미를 되새기는 것은 옛 선사의 정신세계를 엿볼 수 있는 색다른 현장 체험학습의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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