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미국 로펌에 지급한 68억원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실소유주인 다스의 미국 소송 비용을 대납해 준 것으로, 대가성 있는 뇌물에 해당한다고 법원이 판단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정계선 부장판사)는 5일 열린 이 전 대통령의 1심 선고 공판에서 삼성에서 소송비 대납 형식의 뇌물을 받았다는 혐의와 관련해 "2008년 4월 8일 이후 송금된 522만 2천 달러는 뇌물죄 유죄로 인정된다"고 밝혔다.
이는 삼성이 미국 로펌 에이킨 검프(Akin Gump)에 대신 지급한 다스의 소송비가 대가성 있는 금품이었다는 판단이 토대가 됐다.
재판부는 "(에이킨 검프 측 변호사가 청와대를 방문한) 2008년 4월 8일경 삼성의 지원 의사가 (이 전 대통령 측에) 전해진 것으로 보이고, 이때부터 삼성은 비자금 특검 관련 현안 등이 있었고, 이 전 대통령의 재임 기간에 이건희 회장의 특별사면이 이뤄졌다"며 "이런 점을 보면 대가성이 충분히 인정된다"고 봤다.
재판부는 특히 다스에 청구된 소송비용과 동일한 액수를 삼성전자가 에이킨 검프에 지급한 사실에 주목했다.
재판부는 "(검찰 수사과정에서) 삼성전자가 2007년 10월부터 'VIP 보고사항'에 기재된 12만5천 달러를 에이킨 검프에 송금하기 시작했다는 자료가 나왔다"며 "에이킨 검프 측이 청구한 소송비용 그대로 삼성전자에서 에이킨 검프에 지급된 자료도 있어 이를 모두 우연의 일치라 보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다만 에이킨 검프 측 변호사가 청와대를 방문하기 전인 2008년 4월 8일 이전에 이뤄진 자금 지원에 대해서는 이 전 대통령과 삼성 측의 의사 합치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며 뇌물 혐의를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검찰 수사에서 소송비 대납 사실을 털어놓은 이학수 전 삼성그룹 전략기획실장의 자백이 증거능력이 있는지도 이 전 대통령 측이 다투던 쟁점이었지만, 법원은 증거능력이 있다고 봤다.
재판부는 "삼성전자 임직원도 이학수로부터 지시받거나, 어떤 명목으로 지급했는지 모르지만 다른 소송과 다르게 미국 로펌의 청구대로 지급했다는 등의 진술을 했다"고 판단 근거를 제시했다.
이어 "이학수는 자수하면서 지원 명세를 특정해 제출했다"며 "피고인(이 전 대통령)은 이학수가 허위자백을 했다고 주장하지만 이를 받아들이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앞서 검찰은 삼성전자가 미국 로펌인 에이킨 검프측에 2007년 11월부터 2011년 11월까지 지급한 미화 585만달러(한화 약 67억7천400만원)에 대해 다스가 미국에서 진행 중이었던 'BBK 투자금 반환소송'의 소송비용이라고 판단하고 뇌물수수 혐의를 적용했다.
이 전 대통령 측은 이날 법원의 1심 판단에 대해 "대단히 실망스럽다"고 비판했다.
이 전 대통령 측 강훈 변호사는 이날 오후 선고 공판이 끝난 뒤 취재진을 만나 다스의 실소유주가 이 전 대통령이라는 법원의 판단에 "납득이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강 변호사는 "이 전 대통령이 다스 설립자본금을 송금한 게 아니라는 증거를 제시했는데도 재판부가 김성우 전 사장 등의 말을 타당하다고 받아들였다"고 유감을 표했다.
또 삼성의 다스 소송비 대납 부분이 유죄로 인정된 점에 대해서도 "저희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아 실망스럽다"고 말했다.
강 변호사는 "무죄가 나온 부분은 법리적으로 문제 되는 부분들이다. 실제 대부분 다 (무죄가) 예상된 부분이라 유죄 부분이 더 아프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그는 항소 여부에 대해선 "대통령을 접견하고 상의한 뒤에 다음 주 월요일쯤 입장을 밝히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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