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계의 창] 한국의 추석과 일본의 '오본'

고선윤 백석예술대 외국어학부 겸임교수

고선윤 백석예술대 외국어학부 겸임교수
고선윤 백석예술대 외국어학부 겸임교수

日 양력 8월 15일 전후 조상 혼 모셔
위패 놓인 상에 과일·꽃 공물도 올려
신사·절에서 유카타 입고 춤추기도
친목 다지는 한여름밤 즐거운 축제

9월 말 한국을 찾겠다는 일본 친구에게 "추석 연휴니 날을 달리 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더니, "추석, 그게 뭐야"란다. 대한민국 큰 명절의 하나인 추석을 설명하기에 부족해서 '한국의 오본'이라고 얼렁뚱땅 내뱉었는데, 뜻밖에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었다. 조상에게 차례를 지내고 성묘를 하고 고향을 찾는 이가 많아서 교통이 매우 혼잡하다는 사실, 긴 휴일이 이어지고 사회 전체가 기능을 하지 않게 된다는 사실 등등이 매한가지라 명절의 분위기를 전달하기에 충분했다. 그렇다고 추석이 음력 8월 15일, 오본은 양력 8월 15일 전후의 행사이니 양력과 음력의 차이만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면 그건 잘못이다.

석가모니 10대 제자 중 신통력이 가장 뛰어나다는 목련존자가 여름 수행 안거를 하다가 돌아가신 어머니가 아귀도에 떨어져 굶주림과 목마름으로 고통받고 있는 모습을 보고 음식을 드리려고 하지만, 음식은 입에 들어가기 전에 불에 타 재가 되어서 공양할 수가 없었다. 이에 석가모니에게 도움을 청하자, "승려들이 여름 수행을 마치는 마지막 날에 비구들에게 음식을 공양하고 독경을 하면 그 공덕으로 구제를 받을 수 있다"고 했고, 그 말을 따랐더니 어머니만이 아니라 아귀도의 망자들이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는 일화가 있다.

이후 불가에서는 수행을 마치는 음력 7월 15일을 백중날이라고 하며 돌아가신 조상님을 공양하는 날로 정했다. 그리고 아귀보를 받은 중생을 구제하기 위한 법회 우란분(盂蘭盆)을 열었다. 오본(お盆)은 여기서 비롯된 단어이다. 이른바 일본 고유의 민속행사와 우란분의 습합(習合)이 지금의 오본이다. 메이지유신 이후 음력을 쓰지 않으니 음력 7월 15일에 대한 개념은 없고, 그 언저리 양력 8월 15일 전후를 오본이라고 한다.

오본은 시기만이 아니라 행사 내용, 풍습이 지방에 따라 다르지만 대개 다음과 같다. 8월 13일 아침, 조상의 혼을 모시기 위한 상을 차린다. 우리의 차례상처럼 온갖 음식이 정성스럽게 올라가는 그런 상이 아니다. 가정에 상시 모시고 있는 불단 안에 만들거나, 불단 앞에 작은 상을 놓는다. 이 상에는 조상의 위패를 모시고 과일, 꽃, 경단 정도의 공물을 올린다.

여기에 꼭 올라가는 것 중에는 가지와 오이가 있다. 가지는 소, 오이는 말을 뜻하는 것으로 각각 나무젓가락 4개를 꽂아 그 모양을 형상화한다. 조상의 혼이 이승에 올 때는 말을 타고 빨리 오고, 저승으로 돌아갈 때는 소를 타고 천천히 돌아가라는 뜻이란다. 처음에는 단순히 다리 4개만 달더니 이제는 가지와 오이를 가지고 만든 재미난 모양의 소와 말이 SNS를 통해서 소개된다. 해마다 예술적 가치가 더해져 상상을 초월하는 작품들이 쏟아진다. 오이를 가지고 오토바이를 만들고, 로켓을 만드니 찾아오는 조상도 정신 바짝 차려야 할 것만 같다. 여하튼 조상을 맞이해서 아침저녁으로 참배하고 15일경에는 승려를 불러 독경을 하고 조상에게 감사를 표한다. 8월 13일 밤에는 저승에서 찾아오는 조상의 혼이 헤매지 않고 잘 찾아오도록 불을 피우고, 16일에는 바로 이 장소에서 조상의 혼을 저승으로 돌려보내기 위한 불을 피운다.

또 하나, 이 기간 중 신사와 절을 중심으로 유카타를 입은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춤을 추는데 이것이 본오토리다. 지옥에서 벗어난 죽은 자들이 즐거워서 춤을 추는 형상이라고도 하고, 조상의 혼을 기분 좋게 돌려보내기 위한 춤이라고도 하는데, 지금은 종교적 의미를 가지기보다는 지역사회의 친목을 위한 여름밤의 즐거운 '마쓰리'의 하나가 되었다.

나라마다 특별한 날이 있다. 우리의 추석을 그들의 오본으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같은 날 같은 행사는 아니지만 조상을 생각하는 마음은 같은 것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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