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황희정의 엄마가 말린 남미여행](9)번영과 상처의 땅 오루로

멋진 연주와 춤을 보여주는 카니발 행렬
멋진 연주와 춤을 보여주는 카니발 행렬

▶번영과 상처의 땅 오루로

남미여행 전부터 온 동네가 축제 분위기로 물결치는 카니발은 꼭 체험하고 싶었다. 남미에서 카니발이 열리는 대표적인 두 도시는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와 볼리비아 오루로다. 리우데자네이루가 규모 면에서 훨씬 크다고 하여 그곳의 카니발을 보고 싶었지만, 동선상 어쩔 수 없이 오루로에서 열리는 카니발을 보기로 했다.

오루로라는 귀여운 지명은 이 지역 원주민을 일컫던 '우루우루'에서 비롯되었다. 이곳은 해발 4000m 지점에 있는 도시로 20만 명의 거주민이 살고 있다. 은광의 발견으로 급속하게 큰 도시로의 번영을 이루었고, 19세기 말부턴 세계적인 주석 산지로 자리매김 하였지만 정작 지역 원주민들은 이로 인해 뼈아픈 노동의 희생과 착취를 당해야 했다. 카니발에 대한 호기심과 설레는 마음으로 오루로에 도착하였는데, 예림이의 상태가 심상치 않아 보였다. 며칠 전부터 몸 곳곳에 빨간 두드러기가 올라왔었는데, 그 부분이 너무 아프다고 했다. 힘들어도 내색 않고 씩씩하게 다니던 예림이가 아프다고 눈물까지 흘려서 너무 걱정되었다. 병원을 찾다가 약국을 발견하여 약사에게 상태를 보여주니 빈대에 물린 것 같다고 했다. 약을 바르고 난 후 예림이의 상태가 빠르게 호전되어 카니발이 열리는 장소로 넘어갈 수 있었다.

▶전통을 계승하려는 우루인들의 몸부림

오루로 지역은 우루인들에게 예로부터 중요한 의식을 치르는 성스러운 장소였는데, 이토 대축제와 같은 대규모 의례가 열리곤 했다. 그런데 18세기부터 영국인들이 이러한 의례들을 금지하기 시작했다. 전통을 중요시했던 우루인들은 많은 의례를 기독교 전례로 가장하였고 안데스의 신들을 기독교 성인으로 변모시켰다. 그 결과 2000년 동안 그들의 문화는 지속되고 있다.

카니발 기간엔 28,000명이 넘는 댄서들과 10,000여 명의 음악가들이 행렬에 참여하는 대규모 퍼레이드 외에도 각종 가면, 직물, 자수등 다양한 민속예술과 수공예품을 선보인다.

퍼레이드를 하는 곳으로 가까이 가니 큰 음악 소리가 들렸다. 좌석표를 어디서 구매해야 하나 고민하였는데 객석 주변에서 너도나도 표를 팔고 있어 쉽게 표를 구할 수 있었다. 우리가 자리에 앉았을 땐 이미 행렬이 한창 진행되고 있는 중이었다. 다양한 연령층의 사람들이 춤을 추며 행렬을 이어갔는데 어린아이들의 무대가 보였다. 5km에 이르는 길을 30여 시간 동안 쉬지 않고 춤을 추며 행진하는 거라 많이 힘들 텐데 지친 기색 없이 환한 웃음으로 행렬에 참여하고 있었다. 퍼레이드 행렬을 한참 관람하다가 배가 고파서 다시 거리로 나왔다. 수도 '라파즈'에서도 길거리 음식을 많이 접했는데, 이곳에선 그런 길거리 음식점이 줄을 지어 있었다. 우리는 매콤한 초록 소스가 뿌려진 핫도그를 먹었다. 볼리비아의 길거리음식은 정말 우리의 입맛에 맞았다. 초록 소스는 청양고추처럼 매운맛이 나지만 금새 매운기가 사라져서 좋았다. 부른 배를 두드리며 기분 좋게 걷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동네 아이들이 우리에게 하얀 거품이 일어나는 스프레이를 뿌렸다. 카니발 기간 동안만 허용되는 아이들의 짓궂은 장난인데 길가는 사람들에게 물풍선이나 스프레이를 온몸이 젖도록 뿌리거나 던진다. 그래서 이곳에 올 때는 망가져도 될 만한 옷을 입고와야 한다. 거기다가 우리는 그곳에서 손에 꼽을 만큼 몇 안 되는 동양인이었고 아이들에게 좋은 타깃이 되었다.

▶퍼레이드 행렬과 함께 춤을!

볼리비아 오로루 카니발을 조사하던 중 이곳은 관객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카니발이란 말을 들었었는데, 우리도 관람만 하는 것이 아닌 직접 카니발에 참여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카니발의 맨 앞 좌석은 이미 자리가 다 차버렸다. 행렬이 진행되는 곳으로 어떻게 들어갈지 고민하다가 입구를 지키는 경찰에게 슈렉에 나오는 장화 신은 고양이 같은 표정으로 행렬과 함께 사진 찍고 싶다고 말하니 들여보내 주었다. 오루로 카니발의 진가는 그때부터 나타났다. 오전엔 어린아이들과 노인들의 행렬이 있었지만 늦은 오후부턴 중년과 청년들의 행렬이 이어졌다. 눈앞에서 그들을 보는데 정말 앉아서 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흥이 밀려왔다. 몇몇 사람들이 행렬에 뛰어들어 함께 사진을 찍는 걸 보고 우리도 용기를 내어 그들과 사진을 찍었다. 소기의 성과를 이루고 나가려는 순간, 볼리비아인으로 보이는 청년들이 우리와 사진을 찍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찍어줬는데 이번엔 학생들이 오고 그 뒤론 아이의 어머니가 말도 못 하는 어린아이를 우리에게 안기고는 함께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다. 정말 이상한 일이지만 우리와 사진찍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렸다. 태어나서 그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그 순간을 즐기며 기분 좋게 찍었다. 해가 지면서 퍼레이드의 춤은 더욱 격렬해지고 젊은 청년들이 아이돌처럼 멋있게 군무를 했다. 그 모습을 눈앞에서 보는데 예림이와 난 그 사람들 이 너무 멋있어서 팬클럽처럼 환호했다. 그리고 행렬을 이어가는 댄서들과 춤도 추고 사진도 찍었다. 댄서들은 그들의 모자나 가면을 우리에게 씌워주기도 하고 춤도 가르쳐줬다. 행렬은 관람객들과 하나가 되었고 모두 함께 춤을추고 술을 나눠마시고 그 순간을 친구처럼 즐겼다. 너무 흥겹고 즐거워서 밤이 늦도록 지치지 않았다. 그런데 시간을 보니 마지막 버스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오루로 카니발에서 사고를 안 당하면 이상한 일이라며 우리에게 신신당부하던 친구들의 말이 떠올랐다. 그래서 아쉬운 마음을 뒤로한 채 급하게 그곳을 빠져나왔다. 하지만 버스를 타고 라파즈를 돌아가는 내내 그 여운이 사라지지 않았다. 오루로의 카니발을 한번 경험해보니, 리우 대신 오루로로 온 것이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되었고 200% 만족감을 느꼈다.황희정 자유여행가 hmalove123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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