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 만나 술을 찾아도 술 얻기가 어렵더니 逢人覓酒酒難致(봉인멱주주난치)
술 생겨 그리워해도 그 사람 오지 않네 對酒懷人人不來(대주회인인불래)
백년 인생살이가 일마다 다 이러하니 百年身事每如此(백년신사매여차)
허허허 크게 웃고서 벌컥벌컥 마시노라 大笑獨傾三四杯(대소독경삼사배)
"창 밖에 국화 심어 국화 밑에 술을 빚어/ 술 익자 국화 피자 벗님 오자 달 돋아온다/ 아이야 거문고 청(淸)쳐라 밤새도록 놀리라." "오늘도 좋은 날이요 이곳도 좋은 곳이/ 좋은 날 좋은 곳에 좋은 사람 만나 있어/ 좋은 술 좋은 안주에 좋이 놂이 좋아라." 둘 다 작자 미상의 조선시대 시조다. 술 익자 국화 피자 벗님 오자 둥근 달이 휘영청 돋아 오고, 게다가 거문고를 치며 밤새도록 놀 수 있다면, 금상첨화(錦上添花)도 이런 금상첨화는 없다. 좋은 날 좋은 곳에서 좋은 사람들을 만나 좋은 술 좋은 안주에 좋이 놀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은 다시 있을 것 같지가 않다. 하지만 인생살이에서 이처럼 박자가 척척 맞아 떨어지는 금상첨화가 얼마나 될까.
조선중기 시단의 기린아(麒麟兒) 석주(石洲) 권필(權韠: 1569-1612)이 지은 위의 시만 봐도 그렇다. 좋은 벗을 만나 술이라도 한 잔 마시고 싶을 때는 바로 그 놈의 술이 없다. 좋은 술이 생겨 벗과 한 잔 하고 싶을 때는 같이 마실 그 벗이 없다. 길지도 않은 인생살이에서 일어나는 일마다 이처럼 엇박자 나기가 일쑤다. 그러니 허허허 헛웃음을 웃으며 혼자서 막걸리를 연거푸 들이키는 수밖에 없다. '그 님이 오마하고 오시지 아니하니(可人期不至)/ 이 푸른 술동이를 어찌하면 좋을까나(奈此綠尊何)'라고 노래했던 퇴계선생의 시구도 석주의 시와 번지수가 같다.
이 작품에는 '윤이성이 온다고 해놓고 오지 않아서 혼자 몇 잔을 퍼마시고 장난삼아 우스개 시를 지었다'(尹而性有約不來 獨飮數器 戲作徘諧句)는 긴 제목이 붙어 있다. 석주가 강화도의 한 초가집에 살고 있을 때, 찾아오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다행스럽게도 동쪽 이웃에 살고 있던 윤이성이 가끔씩 술을 들고 찾아와서 적지 않게 위로가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한번은 그가 온다고 해놓고 오지 않아서 장난삼아 이 우스개 시를 지었다는 것이다. 석주는 하는 일마다 엇박자가 났고, 심지어 죽음마저도 난데없는 엇박자로 맞았던 사람. 설사 장난삼아 지었다 치더라도, 덩달아 장난삼아 읽을 수는 없는, 도저히 그럴 수는 없는 이유다.
시인·계명대 한문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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