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사법부 시절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의 핵심 인물로 꼽히는 임종헌(59)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15일 검찰에 소환됐다. 임 전 차장 조사는 대법관 이상 전직 고위 법관을 겨냥한 이번 검찰 수사의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서울중앙지검 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검사)은 이날 오전 임 전 차장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를 받는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조사 중이다.
임 전 차장은 재판거래·법관사찰 등 사법행정권 남용과 관련해 지금까지 제기된 거의 모든 의혹에 연루돼 있다. 검찰은 임 전 차장을 상대로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 수뇌부와 어떤 지시·보고를 주고받았는지 중점적으로 캐묻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오전 9시20분께 검찰에 출석한 임 전 차장은 취재진에게 "우리 법원이 현재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 처해 있는 데 대해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고 국민 여러분께 죄송하다"고 말했다.
임 전 차장은 "법원을 위해 헌신적으로 일했던 동료 후배 법관들이 현재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는 것에 대해 너무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제기된 의혹 중 오해가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해명하겠다"고도 했다. 양 전 대법원장으로부터 지시를 받았는지 묻는 말에는 "검찰에서 성실히 답변하겠다"며 즉답을 피했다.
검찰은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차장을 역임하며 양 전 대법원장을 보좌한 임 전 차장이 여러 의혹의 실무 총책임자 역할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전범기업을 상대로 낸 민사소송과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법외노조화를 둘러싼 행정소송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대표적이다.
검찰은 징용소송 재상고심이 대법원에 접수된 직후인 2013년 10월 임 전 차장이 청와대를 찾아가 주철기 당시 외교안보수석에게 소송의 향후 방향을 설명하고 법관 해외파견을 늘려달라고 부탁한 단서를 확보했다. 2016년 9월에는 외교부를 찾아가 정부 의견서 제출 등 절차를 논의했다.
법원행정처가 2014년 10월 전교조 소송서류를 대신 작성해주고 청와대를 통해 노동부에 전달하는 데도 임 전 차장이 핵심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검찰은 의심하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 위기에 몰린 2016년 11월 박 전 대통령에게 직권남용죄를 적용할 수 있는지 검토한 273쪽짜리 'VIP직권남용죄 관련 법리모음' 문건 역시 임 전 차장이 청와대의 부탁을 받고 만들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임 전 차장은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의 댓글 사건 재판, 박 전 대통령 비선 의료진의 특허소송과 관련해서도 청와대와 법원행정처 사이에서 연결고리 역할을 한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그가 양 전 대법원장을 비롯한 수뇌부의 개입을 적극적으로 진술할 경우 잇따른 압수수색 영장 기각 등으로 난항을 겪어온 검찰 수사에 탄력이 붙을 전망이다.
검찰은 이미 양 전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장을 지낸 전직 대법관들을 소환 조사하기로 방침을 정하고 판사들을 무더기로 소환해 '윗선'의 혐의를 뒷받침하는 증거들을 수집하고 있다.
검찰은 차한성·박병대 전 대법관이 법원행정처장을 지낸 2013∼2014년 차례로 김기춘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의 공관에 불려가 징용소송을 논의한 사실을 확인했다. 고영한 전 대법관은 전교조 소송의 주심을 맡았다. 검찰은 이들 재판이 박 전 대통령 관심 사안이었던 만큼 관련 논의가 양 전 대법원장에게도 보고됐을 것으로 의심한다.
임 전 차장은 제기된 의혹이 방대한 만큼 수차례 더 소환조사를 받을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조사 결과에 따라 임 전 차장의 신병처리 방향을 검토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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