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고시절 어느 날, 친구는 나에게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다.
"만약 무척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데, 마법같은 일이 생겨서 그의 영혼과 육체가 다른 사람과 바뀌어 버렸어. 그 때 너는 그 사람의 영혼이지만 다른 육체를 가진 남자랑 살아야 하거나, 외모는 같지만 영혼이 다른 사람이랑 살아야 해. 어느 쪽을 선택할거야?"

참 엉뚱한 질문이다. 마흔이 넘은 이 나이에 그 때의 질문이 생각나는 것은 '뷰티 인사이드'라는 드라마의 방영소식 때문이다. 매일 아침 새로운 육체로 태어나는 주인공의 이야기는 이미 같은 제목의 영화로 상영된 바 있다. 그 때도 주인공의 사연이 흥미로웠지만, '우리는 상대방의 무엇과 사랑하고 있는 걸까'라는 다소 진지한 자문을 해보았던 기억이 있다. 정말 인간에 대한 관심은 심장의 두근거림과 같은 육체일까. 육체의 움직임을 관할하는 내면일까. 시원한 답은 없다.
개운치 못한 이러한 질문은 최근 생명존중 강의를 의뢰받은 후, 더욱 진지하게 다가왔다. 생명존중 강의는 우리나라의 높은 자살율로 인해 교육현장에서 몇 년째 지속되고 있다. 그러나 자살에 대한 이해와 예방 등의 정보공유 외에 뚜렷한 성과를 못내고 있다. 어쩌면 우리는 생명존중이란 것을 알고는 있지만 존중의 대상인 '생명'에 대해 정확히 모르는 것은 아닐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영화의 주인공처럼 자신이 사랑하는 대상이 육체인지 내면인지 모르는 것처럼, 우리도 어쩌면 존중해야 할 대상을 정확하게 모를 수도 있다. 마치 영어단어나 문법을 정확히 모른 채, 문장을 해석을 하려는 오류처럼 말이다.
존중의 대상인 '생명'의 사전적 정의는 '목숨'을 가진 존재를 뜻하기도 하고, 생명체로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뜻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남자는 의리가 생명이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의리가 목숨을 가진 존재라는 뜻이 아니라, 의리가 살아갈 수 있는 힘이라는 뜻이다. 이처럼 생명은 두 가지 의미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하나는, 한 번 끊어지면 재생이 불가하고, 누구나 한 번밖에 가질 수 없는 목숨을 가진 존재로 보는 것이다. 또 하나는 살아움직이는 생동감있는 상태에서 발견되는 생명력으로 보는 것이다. 험한 세상을 꿋꿋히 살아갈 수 있는 저력, 그것이 바로 생명의 또 다른 의미다. 풍선은 공기가 빠진 상태보다 풍선 가득 공기를 갖고 있을 때, 두둥실 하늘로 떠오를 수 있다. 자신이 살아있다고 느끼는 순간은 단순히 코로 숨 쉴 때가 아닌, 숨이 턱에 차 오르고 가슴이 터질 것 같은 강렬한 내안의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느낄 때다. 앞으로의 생명존중은 목숨을 유지한다는 관점에서 벗어나, 생명력을 갖는다는 관점으로 다시 시작해야 할 지도 모르겠다.
이제서야 내 친구에게 말할 수 있다. 매일 변해가는 외모보다 늘 변화시킬 수 있는 내면을 택하겠다고 말이다. 하늘에 떠 있는 풍선의 풍만한 아름다움은 풍선 안에 가득 고인 공기가 만들어 낸다는 '뷰티 인사이드'의 대답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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