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장하빈의 시와 함께] 오독(誤讀) 구석본(1949~ )

TV 자막에서

'미녀'를 '마녀', '회장실'을 '화장실',

'사건'을 '시간'으로 읽었다.

가을날,

수목원 나무에 걸린 명패에서

'수액'(樹液)을 '추억'(追憶)으로 읽는다.

오독(誤讀)이다.

'고목나무'를 '고독나무'로 읽은 날,

비로소 알았다.

오독이 아니라

비워진 마음의 중심에서

울려온 말씀인 것을.

이 가을 수목원에는

고독나무가 붉게 물들어가고 있다.

―시집 '추억론' (지혜, 2015)

* * *

장하빈 시인
장하빈 시인

우리는 종종 오독(誤讀)을 한다. '미녀'를 '마녀'로, '회장실'을 '화장실'로, '사건'을 '시간'으로 읽는다. 어디 그뿐인가? '사람'을 '사랑'으로, '사랑'을 '사탕'으로 읽고, '고요'를 '소요'로, '미망인'을 '이방인'으로 읽고, '짝꿍'을 '짝퉁'으로, '모델'을 '모텔'로 읽는다. 즐거운 오독이다. 이처럼 오독은 입가에 미소를 번지게 하는 순간을 낳기도 한다.

오독이 왜 생기는 걸까? 흔히, 시를 읽는다는 것은 시인이 언어의 미로 위에 숨겨놓은 코드를 찾아가는 과정이라 한다. 그 과정은 지성적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감성적이어서 오독이 생겨나는 법이다. 시인이 '고목나무'를 '고독나무'로 잘못 읽은 까닭은 "비워진 마음의 중심에서 / 울려온 말씀"때문이라 했다. 그렇구나! 오독은 단지 시력 탓이라기보다는 자기 내면의 시선과 삶의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는데서 기인하는 것이리라.

'고독나무'가 붉게 물들어가는 가을 수목원으로 가 보자. 아마도 지금쯤 '숲'이 '金'으로 활활 타오르고 있으리라.

시인 · 문학의 집 '다락헌' 상주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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