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20년 전 '대구 여대생 성폭행 사망 사건' 스리랑카인 용의자 현지 법정 세운다

1998년 정은희 양 성폭행 사망 사건… 2013년 재수사 후 기소
국내서 무죄 확정돼 스리랑카 검찰과 사법공조 통해 기소

20년 전 대구에서 발생한 여대생 정은희(당시 18세·대학 1학년) 양 성폭행 사망 사건(본지 2013년 9월 6일 자 1면 등 보도)의 주범으로 지목됐던 스리랑카인이 본국에서 다시 법정에 서게 됐다.

법무부는 스리랑카 검찰이 한국 정부의 요청에 따라 대구 여대생 성폭행 사망사건 용의자 K(52) 씨를 스리랑카 콜롬보 고등법원에 성추행 혐의로 기소했다고 16일 밝혔다. 기소는 스리랑카 형법 상 공소시효(20년)가 만료되기 불과 4일 전인 지난 12일 이뤄졌다.

K씨는 다른 스리랑카인 공범 2명과 함께 1998년 10월 17일 새벽 달서구 구마고속도로(현 중부내륙고속도로) 아래 굴다리에서 대학 축제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정 양을 성폭행하고 금품을 빼앗은 혐의로 범행 15년 후인 지난 2013년 기소됐다.

당시 정 양은 고속도로에서 덤프트럭에 치여 숨진 채 발견됐다. 인근에서 벗겨진 속옷이 발견돼 성폭행이 의심됐지만, 경찰은 단순 교통사고로 결론 짓고 수사를 종결했다.

그대로 묻힐 뻔한 사건은 2013년 K씨가 미성년자에게 성매매를 권유한 혐의로 입건돼 유전자(DNA) 검사를 받으면서 수면 위로 떠올랐다.

K씨의 DNA가 정 양 속옷에서 발견된 것과 일치한다는 사실이 드러났고, 검찰은 재수사 끝에 특수강도강간 혐의를 적용해 그를 재판에 넘겼다.

강간죄는 5년, 특수강간죄는 10년으로 모두 공소시효가 지났기 때문에 유일하게 15년으로 시효가 남아있던 특수강도강간 혐의를 택했다.

그러나 특수강도와 특수강간 혐의를 모두 입증해야 해 재판은 어렵게 흘러갔다. 1심 재판부는 K씨가 정 양의 소지품을 빼앗았다는 명확한 증거가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은 범행 과정을 전해들었다는 다른 스리랑카인을 찾아내 항소심에 세웠지만, 재판부는 증언의 신뢰성이 떨어진다며 역시 무죄를 선고했다.

지난해 대법원이 항소심을 확정하면서 K씨를 국내법으로 처벌할 길은 막혔다. 그는 이 혐의와 별개로 성추행 및 무면허 운전 등으로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아 스리랑카로 강제추방됐다.

K씨를 처벌할 방법을 고심하던 법무부는 스리랑카 형법 상 강간죄 공소시효가 남아있음을 확인, 사법공조를 통해 스리랑카 검찰에 기소를 요청했다.

법무부는 스리랑카가 한국과 형사사법공조 조약을 맺지 않은 국가여서 공조를 거절할 수도 있다고 판단, 전담팀을 구성해 2차례 스리랑카 검찰청을 찾아 1천 장에 달하는 증거서류를 번역해 전달하는 등 협의에 주력했다.

스리랑카 측도 수사팀을 국내에 파견해 참고인 조사를 벌이는 등 협조한 끝에 결국 K씨를 현지 법정에 세우게 됐다.

다만 스리랑카 검찰은 K씨의 DNA가 피해자의 몸이 아니라 속옷에서 발견됐고, 강압적 성행위를 인정할 추가 증거가 없는 점을 들어 성폭행이 아닌 성추행 혐의로만 기소했다. 스리랑카 형법 상 성추행 죄의 양형기준은 징역 5년 이하로 돼 있다.

법무부 관계자는 "비록 공소시효가 완성돼 국내 법원에서는 처벌할 수 없었지만, 긴밀한국제공조로 스리랑카 법원에서 공소시효가 완성되기 직전에 기소할 수 있었다"며 "공판 과정에서도 스리랑카 검찰과 협조해 사법정의 구현에 노력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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