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만에 경주 양동을 방문했다. 다른 인연이 있기도 했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해서 기대가 컸다. 산책길로 좋았고 잘 보존된 고택도 잘 정비된 산책로도 좋았다. 경상도 반촌(班村)-양반마을의 분위기가 좋았다. 그러나 아쉬움도 컸다.
우선 안내가 턱없이 부족했다. 인물 소개는 벼슬 나열이 고작이고, 마을과 고택 소개는 공학적 설명으로 끝난다. 회재 이언적 선생이 왜 거유(巨儒)로 불리는지, 성리학의 기초라도 소개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주리론, 주기론, 이기일원론이니 이원론이니 말만 들었지 제대로 아는 한국인도 많지 않은데, 설명다운 설명을 찾아 볼 수 없다. 마을과 고택에 얽힌 풍수사상에 대해 영어 안내판은 '토폴로지(Topology...)'로 시작한다. '풍수지리'의 영어 번역이 '토폴로지'긴 하지만, 영어권 사람들은 이를 '위상수학(位相數學)'으로 읽는다.
양동을 대표하는 인물, 회재 선생의 이름, 호, 시호도 소개할 가치가 있다. '언적(彦迪)' 선비 언, 큰 인물 언, 나아갈 적, 이끌 적, 그래서 '언적'은 '이끌어가는 큰 스승'이란 뜻이 된다. 아호 '회재(晦齋)'는 '반성하는 집', 시호 '문원공(文元公)'은 '글, 정신문화의 원천'이라는 뜻이다. 거기에 원래 이름은 외자 '적(迪)' 이었지만, 임금의 명으로 언적이 되었다는 이야기까지... 얼마나 재미난가?
'숭례문(崇禮門)'이 무슨 뜻이며 '덕수궁(德壽宮)'이 무슨 뜻인지 아는 사람이 내국인이든 외국인이든 몇이나 될까? 왜 임금의 정전은 근정전(勤政殿)이며 왕비, 태후의 거처는 교태전(交泰殿), 자경전(慈慶殿)인가? 요즘 아무나 입에 달고 다니는 스토리텔링이 별건가? 이런 게 스토리텔링인데. 이런 해석이 없다면 '양동'에서 우리 미래 세대가 무엇을 자랑할 것이며, 외국인들이 한국에서 무엇을 깨달을 것인가?
근대 이전,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칼 휘두르던 자들이 권력 잡고 국정을 주물렀다. 그 후손이 명문 귀족이 되고, 귀족의 아들은 사관학교를 다녔다. 돈많은 상인들이 무인 귀족에 대항해 궐기한 것이 이른바 시민혁명이다. 우리나라처럼 중세 이전부터 독서계급이 국정을 담당하고 권문세가를 이룬 나라는 극히 드물다. 우리에게는 정신문화, 소프트파워가 군사문화, 하드파워를 통제한 유구한 전통이 있는 것이다.
양동을 비롯한 전통 마을에서는 정신 문화를 우위에 놓은 자랑스런 우리 역사를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세계문화유산 양동에는, '양동의 추억'을 되새길 책자 한 권, 기념품 하나 없다. 우리야 그렇다 치더라도 일생에 단 한 차례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이 인류문화유산 '양동'을 기념할 게 아무 것도 없다.
이집트에 가면 작은 은판에 이집트 상형문자로 이름을 새겨 목걸이 명찰로 사게 만든다. 고대 이집트 역사의 한 장면을 모티브로 한 파피루스와 면 티셔츠를 판매한다. 조금만 생각하면 양동도 기념품 소재는 쌔고도 넘친다. 무첨당(무첨당이나 향단, 수졸당, 관가정같은 고택의 모형이나 사진, 선비의 갓이나 문방 사우, 기념비의 탁본이나 문헌의 사본, 고지도 형식으로 제작한 양동 마을 조감도...
간식조차 여느 서구 관광지마냥 각종 커피와 아이스크림 일색이다. 입구 매점에서는 컵라면과 샌드위치를 판다. 외국인을 위해 샌드위치는 그렇다 치고, 인류문화유산의 품위가 있지 컵라면이라니... 한입에 들어갈 작은 크기의 양반가 떡과 다양한 전통차를 설명 곁들여 내놓으면 좋지 않을까?
마지막, 마을 입구의 벽화, 꼭 콘크리트로 급조해야 했을까? 어차피 시간 여행인데. 초입의 초등학교도 전통 서원의 건물 배치를 참고했으면 훨씬 낫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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