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전쟁이 끝나면 하나의 세상이 소멸하고, 또 하나의 세상이 탄생한다. 이 책은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은 승패를 결정 짓는 전략이 아니라 전쟁이 끝나고 난 뒤에 펼쳐지는 일들'이라고 말한다. 전쟁의 참 의의는 전쟁 자체보다는 전쟁 뒤에 전개되는 역사를 살펴볼 때 비로소 드러난다는 것이다. 그래서 전쟁 패배가 약이 되는 경우도 있고, 승리가 독이 되는 경우도 있다.
이 책 '전쟁 이후의 한국사'는 한국사를 결정 지은 주요 전쟁들이 어떻게 마무리 되었으며, 승자와 패자는 각각 어떤 미래를 열어갔는지를 살핌으로써 한국사를 조망한다. '전쟁'이라면 우리는 으레 죽은 자와 다친 자, 모든 것을 잃은 자를 생각하는데, 이 책은 '살아남은 자들의 후일담'이라고 할 수 있다.
◇ 신라가 당나라와 결전을 펼치지 않았다면
신라는 당나라와 연합해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킨 후 논공행상과 잔치를 펼쳤다. 하지만 축배를 오래 들지는 않았다. 전쟁을 막 끝냈지만 그것이 또 다른 시작임을 명확하게 알고 있었던 것이다.
예상대로 당나라는 신라마저 삼키려는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시시각각 닥쳐오는 대제국 당의 압박에 신라는 어떤 식으로든 대응해야만 했다. 신라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하나는 당의 속국이 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당에 맞서는 것이었다. 신라의 선택은 후자였다.
670년 3월. 2만의 신라 군사들이 압록강을 건너 오골성을 선제공격했다. 오늘날 중국 요녕성 봉성진이다. 요동은 신라가 한번도 밟아보지 못한 땅이었다. 이 전격 작전으로 나당전쟁이 시작됐다.
신라가 전격 공격을 감행하자 당나라의 이목은 요동에 쏠렸다. 이때 남쪽에서는 신라 주력군이 당나라가 점령하고 있던 옛 백제지역 웅진도독부를 공격해 82개 성을 빼앗고, 영토 대부분을 장악했다. 이로써 신라 서쪽의 방어 부담은 사라졌고, 신라는 서쪽 전선을 지키던 병력까지 북쪽으로 돌려 당나라군의 남하에 대비할 수 있었다. 만약 신라가 웅진도독부를 공격하지 않았더라면, 또는 웅진도독부 점령이 늦어졌더라면, 한반도는 당나라 땅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신라가 대제국 당나라와 최후의 결전을 치르기까지는 고민이 많았다. 신라는 결전을 선택했고, 이를 위해 국내외 정세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치밀하게 준비했으며, 과감하게 행동했다. 그리고 7년 동안 이어진 전쟁에서 끝내 승리함으로써 한반도 장악력을 지켜냈다.
통일신라의 기반이 있었기에 후삼국이 성립했고, 이후 고려와 조선으로 이어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책은 '신라의 삼국통일로 한국사의 범위가 한반도로 국한되었다고 비판하는 학자들도 있지만, 신라가 이룩한 삼국통일과 나당전쟁 승리가 오늘날 한국의 터전과 기반을 마련한 점을 부인할 수 없다'고 분석한다.
◇ 죄인들에게 행하던 문신이 사회풍조로
고려시대인 1135년 2월 김부식이 서경을 공략함으로써 묘청의 난이 정리되었다. 난에서 가장 강하게 항거한 자는 '서경역적'이라는 네 글자를 이마에 새겨 절해고도로 보냈고, 그 다음 죄에 해당하는 자는 '서경' 두 글자를 새겨 향과 부곡으로 보냈다. 한국사에 '문신형'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이 이 무렵이다.
한국의 고대역사를 기록한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는 문신과 관련한 기록이 없다. 그러나 '고려사'와 '형법지'에 문신형에 대한 기록이 나타난다. 이자겸의 난과 묘청의 난을 거치면서 고려사회에 문신형이 본격적으로 나타난 것이다. 하지만 문신형을 받은 이들이 점차 늘어나면서 고려인들 사이에서 문신은 죄인의 낙인이 아니라 일종의 유행으로 번지게 되었다.
◇ 담배전매제도, 우리나라를 담배수출국으로
전매제도는 국가가 특정 재화의 생산이나 판매를 독점하는 것을 말한다. 전매는 크게 수익을 목적으로 하는 것과 공익을 목적으로 하는 것으로 나뉜다. 수익을 목적으로 하는 대표적 전매가 담배이고, 공익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소금이다. 조선을 집어삼킨 일제는 1920년 재원을 확보하기 위해 담배전매제도를 시행했다. 3.1 운동이 일어난 뒤 '문화통치'를 위해 재정지출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국가의 담배전매는 해방 뒤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1948년에는 재무부 전매국, 1952년에는 전매청, 1987년에는 한국전매공사, 1989년에는 한국담배인삼공사로 명칭이 변경되었을 뿐이다. 2002년 한국담배인삼공사는 KT&G로 회사 이름을 바꾸고 민영화 되었다. 일제가 시작한 담배제조 전매제도는 결과적으로 100년 가까이 이어졌고, 오늘날 한국은 세계 5위권의 담배수출국이 되었다.
◇ 고조선 멸망부터 6.25전쟁 이후까지 다뤄
이 책은 고조선 멸망부터 6.25전쟁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 역사의 대표적인 전쟁들을 선별한 다음 그 뒷이야기를 풀어낸다. 배신자들이 더 당당하게 살았다는 후일담, 포로로 잡혀와 눌러앉은 사람들의 삶, 전란 이후 종가집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배경 등 전쟁 이후 크게 변한 사회문화와 역사를 소개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고대, 전쟁 이후의 의문들 ▷고려, 전쟁 이후의 이야기들 ▷조선, 전쟁 이후의 드라마들 ▷근현대, 전쟁 이후의 역사들 등 4부로 나누고 32가지 에피소드로 정리하고 있다.
▷ 지은이 이상훈은
우리나라 전쟁사를 전문으로 연구하는 역사학자. 경북대에서 '나당전쟁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일본 가쿠슈인대학과 중국 베이징사범대학에서 수학했으며, 경북대 아시아연구소 전임연구원과 영남문화연구원 연구교수를 역임했다. 현재 육군사관학교 군사사학과 조교수로 재직하며 한국사와 군사사를 강의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나당전쟁 연구' '전략전술의 한국사'(2015년 세종도서 학술부문 도서), '신라는 어떻게 살아남았는가' 등이 있다
348쪽, 1만6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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