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정부가 지정한 빼어난 경치를 '명승'이라 한다. 국가지정문화재다. 예천은 명승을 대구경북에서 가장 많이 보유한 곳이다. 경북도청 신도시 효과로 안동 하회마을까지 예천 관광 코스로 묶인다. 안동에 온 김에 예천을 둘러보든, 문경에 온 김에 예천을 둘러보든 예천에 명승지가 꽤 있다는 건 확실하다.
명승은 전국에 111곳이다. 경북에도 15곳이 있다. 그중 3곳이 예천에 있는 회룡포, 선몽대 일원, 초간정 원림이다. 회룡포가 2005년, 선몽대가 2006년, 초간정 원림이 2008년 명승으로 지정됐다.
사실 말이 나온 김에 잠시 곁가지를 건들자면 2000년 이전까지 국내의 명승은 8곳에 불과했다. 희소가치가 있었다. 이런 흐름은 2000년대 중반까지 이어졌으나 2007년부터 2009년까지 매년 두 자릿수로 지정된다. 2007년 11곳, 2008년에는 무려 21곳이 명승으로 지정됐다. 결과적으로 우리 지역 여러 곳도 명승 반열에 올랐다. 그런데 대구에는 한 곳도 없고 경북에만 15곳이 있다.(표)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자. 예천 명승 지정의 공신은 단연 내성천이다. 물돌이와 어우러진 주변 경관이, 번역체로 말하자면 '말로 형언하기 어려운'이다. 내성천 없는 회룡포와 선몽대를 상상하기 어렵다.
그런데 근래 들어 상상하기 어렵던 게 현실이 되고 있다. 선몽대는 모래가 내성천 물길마저 막는 지경이 됐다. 모래가 많이 쌓여 그 위에 풀이 많이 자랐다. 우스갯소리로 조금만 더 있으면 축구장을 만들어도 되겠단 말까지 나온다. 선몽대 일원이 옛 모습을 되찾으면 다시 소개하기로 하고 안타깝지만 이번에는 싣지 않는다.

◆회룡포
대개가 그러하듯 명승으로 지정되기 전부터 워낙 경치가 뛰어나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았던 곳이다. 오죽하면 드라마 제작자들이 먼저 알고 달려왔을까. 회룡포도 2000년 방영된 '가을동화', 18년 전 작품이라 기억나지 않는다면 "얼마면 돼, 얼마면 되냐고"라는 대사의 그 드라마 촬영지로 간택되면서 전국적 유명세를 떨친다.
드라마 이전에도 예천사람들이 고향의 관광지로 가장 먼저 추천하던 곳이 회룡포다. 사진만 언뜻 보면 '하회마을'과 헷갈릴 만하나 하회마을이 회룡포에 비해 가옥이 훨씬 많다.
회룡포를 사진으로 담아오는 이들 대부분이 반드시 오르는 곳이 '회룡대'다. 회룡포 전망대로도 부른다. 회룡대가 지척인 장안사 앞 주차장까지는 자동차로 갈 수 있다.
회룡대로 가는 난코스는 주차장에서 300m쯤 되는 오르막이다. 뜻밖의 체력장인데 223개의 계단이 기다리고 있다. 아파트 14층 높이다. 단숨에 올라갈 수 있으면 스테미너 자랑도 용서된다. 한 번 쉬었다면 다시 운동 시작하자.
밭은 숨 달래며 회룡대에서 본 회룡포는 정지 화면처럼 보인다. 回龍, 용이 돌아간다는 모양은 적확한 표현이다. 영락없는 용틀임이다. 다만 시간이 갈수록 모래가 늘어 용의 몸이 왜소해졌다. 저러다 물길이 막히진 않을까. 용신이 끊기진 않을까 싶지만 현미경 보듯 한 곳을 뚫어지게 보노라면 물이 흐르는 게 보인다. 마을에서 사람들이 오가는 것도 보인다.

가까이서 보고 싶다면 다리를 건너야 한다. '뿅뿅다리'라는 이름이다. 공사장에서나 쓰일 법한 지름 5cm 정도의 구멍이 무수히 나 있는 철발판을 여러 개 연결해 다리로 만들었다. 1997년 예천군에서 설치해준 것이라는데 주민들의 안전한 이동을 위해 관청이 준설한 것치곤 매우 성의가 없다는 생각이 들만도 했지만 지금은 누가 봐도 신의 한수가 됐다.
연인들이 바특하게 손잡아 나란히 걸으면, 자전거 한 대를 끌고 가면 적당한 폭, 1m 남짓이다. 수량이 많아 철판에 난 구멍으로 물이 '퐁퐁' 올라온다고 '퐁퐁다리'로 불렸던 게 '뿅뿅다리'로 굳어졌다.
물이 '퐁퐁' 올라오든 '뿅뿅' 올라오든 하이킬, 킬힐 등 힐이 있는 굽 높은 구두로 건너기엔 기술이 필요해 보였다. 맨발로 걷기엔 철판의 지압효과가 지나치게 강해 보이니 처음부터 힐을 신고 오지 말아야 한다.
회룡대에서 본 내성천과 가까이에서 본 내성천은 다르다. 회룡대에서 내성천만 보고 돌아갔다면 다음번엔 꼭 가까이에서 보길 권한다. 모래는 노란 눈이 내렸나 싶을 만큼 보드라웠고, 보폭을 좁혀 다리를 건너는 동안 내성천은 '졸졸' 소리를 내며 흘렀다. 동요 '여름냇가' 가사처럼 '시냇물은 졸졸졸졸, 고기들은 왔다 갔다'했다.
이곳도 모래사장 면적이 넓어졌다. 모래가 점점 쌓이면서 풀이 많이 자랐다. 어린아이 살결같던 백사장의 성장 과정이면 좋겠지만 그런 것 같진 않다.

◆초간정, 금당실 송림, 용문사
예천의 북서쪽 용문면에는 명승인 초간정을 비롯해 천연기념물인 금당실 송림, 그리고 윤장대로 유명한 용문사가 있다.
초간정은 언제든 좋지만 특히 10월 말, 11월 초가 절정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적시하자면 해질 무렵이다. 노을이 도와주면 그 자리에 있는 누구든 그림 속 주인공이 된다. 단풍나무가 주변에 여럿 있는데다 키가 큰 소나무들과 어울리고 정자 앞으로 금곡천이 휘돌아 나가는데, 파블로프의 개가 종소리를 듣고 침을 흘렸듯, 좋은 풍경을 봤을 때 조건반사처럼 튀어나오는 '이야'를 듣게 된다.

초간정은 조선 중기 선비 권문해 선생이 벼슬에서 물러나 말년을 보내기 위해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원형은 안타깝게도 두 차례 난리(임진왜란, 병자호란)에 불타버렸다. 현재의 건물은 1870년 후손들이 새로 고쳐 지은 것이라 했다.

초간정에서 3km 거리에 금당실 송림이 있다. 금당실마을 방풍림으로 조성된 것이었다. 정감록은 금당실마을을 전쟁이나 천재지변에도 안심할 수 있는 십승지로 꼽았다. 그런 마을에도 허한 부분이 있어 심은 방풍림이 소나무숲이었다.
비슷한 곳으로 의성 사촌가로숲을 들 수 있는데 의성 사촌마을 역시 서쪽의 휑한 기운을 막기 위해 느티나무와 상수리나무 등을 심어 사촌가로숲을 조성했다. 이곳도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다.

금당실 송림 안으로 들어서면 두 가지로 놀란다. 하나는 소나무들이 제법 굵다는 점, 또 하나는 띄엄띄엄 자리잡아 밀도가 낮다는 점이다. 덕분에 숲은 여유롭다. 그늘과 햇살의 적절한 배율로 생애 최고의 사진, 인생샷의 좋은 배경이 된다.
용문사는 초간정에서 자동차로 10분 거리다. 일주문에서 사찰을 바라보며 들어가는 길이 가을과 제법 잘 어울린다. 소백산 자락이 가을색으로 완연하고 인적도 드물어서다.

용문사의 자랑은 단연 윤장대다. '회전식 책장'이라 번역된다. 꽃살무늬, 빗살무늬 두 개가 불상 양 옆에 있다. 윤장대를 한 번 돌리면 불경을 한 번 읽은 만큼 불심을 닦을 수 있다고 한다.
아무 때나, 아무나 돌릴 수 있는 게 아니다. 1년에 두 번(음력 3월 3일, 9월 9일) 돌린다. 보물로 지정된 용문사 윤장대는 국내 유일이다.
윤장대의 시작은 중국이었다고 한다. 예상했겠지만 글을 못 읽는 불자들을 위한 것이었다. 티벳불교의 상징처럼 돼 버린 '마니차'를 보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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