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에세이 산책] 우리들의 축제

김일광 동화작가

주말마다 축제다. 마침 작업실에서 나오는 길에 축제가 있다는 면민운동장으로 가 보았다. 한데 어울려야 할 축제가 왠지 연출자와 구경꾼이 나누어진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축제 마당을 둘러보면서 여행 중에 만났던 한 도시를 떠올렸다. 찾아간 그날도 마침 축제일이었다. 작은 시골 도시 페르덴을 만든 알러강은 크지 않았다. 형산강보다 훨씬 작았다. 그러나 그 강을 따라 펼쳐진 숲과 들녘은 정말 탐이 났다. 해 질 무렵, 말 등에 앉아서 강가를 거니는 아이들의 모습은 동화의 장치들이었다. 그들이 바로 백조의 왕자였으며, 착한 한스였다. 이 도시의 중심 번화가는 보행자 전용도로였다. 포항의 중앙상가와 비슷하였다. 성장을 하고 차분하게 앉아 있는 아가씨를 보는 듯하였다. 지나는 사람들이 모두 축제를 위하여 준비된 배우처럼 그 자리에 꼭 어울렸다. 그만큼 연출되지 않은 축제였다.

인간이 사회를 구성하는 모든 곳에는 전통문화에 그 기원과 뿌리를 둔 축제가 있었다. 오늘날에는 종교적인 의미보다 공동체를 결속시키는 장이 되고 있다. 현대 사회는 '우리'라는 통합적 개념보다는 '나'라는 해체적 개념 쪽으로 기울어져 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 속에서 우리를 회복하고 구성원의 동질성과 정체성을 확인하려면 문화적 기제로서 축제의 활용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페르덴 사람들은 바로 그런 축제를 만들어 대대로 이어온 자신들의 원형, 바로 그 동화의 세계를 지켜가고 있었다.

여행 생각에서 벗어나 어릴 때 보았던 우리 마을 놀이를 떠올렸다. 벼를 베 낸 넓은 논배미에다 대나무 기둥을 박고 얼기설기 무대를 만들었다. 아마 농사일을 끝낸 뒤에 노동의 피로감과 일제 수탈에 대한 분노를 떨쳐내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힘으로 경쟁하던 경기가 어느 정도 지칠 때면 무대에서 노래자랑이 펼쳐졌다.

그런 마을 고유의 전통과 일제에 대한 저항과 단합이라는 정신에 따라 펼쳐지던 마을 놀이는 언제부터인가 사라지고 말았다. 자연 부락이라는 공동체 인식이 사라지면서 마을 놀이 문화도 사라지고 말았다. 그런데 새로 등장했다는 축제마저 특산품 판매장터로 변하고 말았다.

축제에서 혼자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데 아는 얼굴을 만났다. 점심 전에 왔다면 점심밥까지 제공했을 텐데라며 아쉬워했다. 그러고는 본부석으로 달려가더니 기념품까지 안겨 주었다. 지나가는 길에 들렀다가 횡재한 셈이었다. 그런데도 자꾸만 축제 모습이 아쉽기만 했다.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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