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눈에 척 봐도 작품이 품어내는 아우라가 예사롭지 않다. 화면을 빼곡하게 메운 작은 사각형 또는 마름모꼴의 무늬가 연이어져 있고 평행선과 사선의 붓 터치가 단순하게 반복되는데 명도가 비슷한 색채들이 병렬 또는 직렬로 배치된 화면은 마치 최고급 비단결처럼 부드럽고 따뜻한 느낌으로 확 안겨온다. 분명 청색 계열의 색깔이 화면을 구성하고 있건만 그 느낌은 차가운 게 아니라 오히려 따뜻하게 다가오니 이 무슨 조화인가? 눈의 착시현상인지 느낌의 역설인지 모를 일이다.
자신만의 독특한 템페라기법을 이용해 착시와 몽환적 화면을 선보여 온 김영리(60) 작가의 개인전 'IN'전이 12월 30일(일)까지 쇼움갤러리(동구 효목동 e아름다운 치과 내)에서 열린다. 이 전시에서는 김 작가가 올해 심혈을 기울여 제작한 신작 30점이 선보인다.
템페라(Tempera)기법이란 중세 시대 대표적 미술기법인 프레스코 기법의 일종으로 천연 안료에 달걀노른자나 벌꿀, 무화과 즙 등을 용매제로 섞어 만든 물감 혹은 그것으로 그린 그림을 말한다.
김 작가는 캔버스에 일단 옅게 석고(灰)를 발라 완전히 말린 후 그 위에 템페라 기법으로 그림으로써 보존성이 매우 높고 모작이 거의 불가능한 자신만의 드로잉을 구사하고 있다.
이 전시회를 유치한 쇼움갤러리 김수현 대표는 "김 작가의 작품을 처음 마주한 순간 우리나라 전래의 한지가 주는 부드러움과 함께 그 깊이를 모를 정도로 작품 속으로 빠져 들었다"면서 "마치 정육면체 큐빅을 바다에 던졌을 때 큐빅이 한들한들거리며 한없이 가라앉는 모습이 연상되었다"고 말했다.
홍익대 미대에서 동양화를 전공한 후 화단에 데뷔한 김 작가는 미국 뉴욕에서 작가활동을 하던 중 기획자의 눈에 띄어 미국 주요 도시에 방영되는 아트프로그램에 34인의 아티스트 중 한명에 선정되기도 했으며 키스 해링, 백남준 등 세계적인 아티스트와 함께 이름이 거론된 정도로 명성을 얻었다. 이후 귀국해 현재까지 경기도 양평에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김수현 대표가 전하는 김 작가의 작업 자세도 엄청난 집중력을 요구한다. 김 작가는 캔버스 앞에서 영감이 떠오르지 않으면 일단 드로잉을 중단한다. 이후 영감이 떠오르면 최소한 10시간 이상씩 작업에 몰입한다, 작가는 이때가 오히려 가장 행복하다고 했다. 그의 그림을 가까이서 보면 고도의 집중력이 없으면 나올 수 없을 작품임을 쉽게 느낄 수 있다.
특히 노란색을 사용한 그의 작품을 보면 그 색감이 단순한 노란색이 아니라 햇살 받은 금빛이 은근하게 감도는 것이 보는 이로 하여금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템페라기법이 자아내는 색의 마술이 아닐 수 없다.
김영리 작가는 작가노트에서 "2018년은 나에게 중요한 해가 될 것 같다"고 언급하면서 "35년을 자연과 인간, 도시라는 명제를 가지고 번갈아 가며 스토리 위주 작업을 해 왔으나 올해 초 개인전을 기점으로 변화가 일어났다"고 술회하고 있다. 이어서 그는 "반복되는 붓질의 행위 속으로 몰입하면서 내 자신이 지속적으로 추구해왔던 예술의 궁극적 목표 메시지, 상징적 의미들이 해체되고 비워지고 단순해지면서 창작의 고뇌는 사라지고 있었고 나의 내면은 사라지는 만큼 고요해지고 있었다"고 고백했다.
작가의 말처럼 깊이 있는 그림이 주는 여유로움를 한 전시회를 통해 가질 수 있다면 이게 다름아닌 '소확행'이리라. 문의 053)745-98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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