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의창] '먹는다는 것'  

김동은 계명대 동산병원 교수(이비인후과)

김동은 계명대 동산병원 교수
김동은 계명대 동산병원 교수

'자장면·피자·치킨'. '편도 절제술'을 받아 '밍밍한' 미음을 먹어야 했던 초등학생이 병실에 붙여 놓았던 먹고 싶은 음식 목록이다. "얘가 '먹방'만 보고 있어요" 보호자의 말씀에 "나도 봐도 될까?"라며 침대에 걸터앉아 잠시 '먹방'을 함께 봤다. '먹방' 진행자는 한계에 도전이라도 하는 듯 자장면을 10그릇 넘게 먹고 있었다. '먹방'을 보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먹는 방송(먹방)'이 인터넷에 등장한 지 10여 년 만에 '틀면 먹방'이라 할 만큼 '안방극장'을 장악했다. '먹방'을 통해 과도한 다이어트로 억눌렸던 식욕의 해방감을 느끼고, 희망이 안 보이는 답답한 현실에서 위로를 얻는'순기능'도 물론 있다.

그러나 '폭식(暴食)', '괴식(怪食)'등을 보여주는 도를 넘어선 인터넷 '먹방'은 음식 습관을 형성하는 시기에 있는 청소년들에게 '먹는다는 것'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심어주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대한 비만학회는 최근 발표를 통해 인터넷 방송을 통한 '먹방'이 우리나라 청소년에 미치는 악영향이 매우 크다며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2016년 우리나라 남자 아동과 청소년의 비만율이 26%로 OECD 평균을 넘어섰다. 소아 청소년기의 비만은 자라면서 당뇨병, 심장 질환 등 각종 대사 질환에 걸릴 위험을 높여 걱정이 아닐 수 없다. '먹방 규제'라는 논란이 있었지만, 보건복지부가 '국가 비만 관리 종합 대책'으로 폭식을 조장하는 TV나 인터넷 방송 등 미디어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자 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영국에서는 지난 2005년부터 열량만 높고 영양가는 낮은 '정크 푸드' 광고를 규제해 실제로 효과를 보기도 했다.

'먹방'에 몰입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사회적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한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노력이 '먹방 규제'보다 시급함은 물론이다. 아울러 '먹는다는 것'에 대한 우리의 성찰 또한 필요하다. 우리에게 '먹는다는 것'은 단순한 '영양 섭취'가 아니었다.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연결하는 소중한 통로였다. 그런데 먹을 것이 넘쳐나면서 '먹는다는 것'에 대한 이러한 사회적 의미는 퇴색되었다. 감정적으로 먹고, 쾌락을 위해 먹고, 심지어 다른 일을 연기하고자 먹는다.

"밥은 먹었니?" "진지 드셨어요?" 먹을 것이 부족하던 '배고픔의 시대' 우리가 나누었던 인사 속에는 타인을 향한 따스한 정(情)과 배려가 스며있었다. 서양 사람들이 '진지 드셨어요?'라는 우리의 인사말을 아름다운 한국어로 꼽은 까닭도 여기에 있다. 이런 인사가 사라지며 우리의 따뜻한 마음마저 사라진 것 같아 아쉽다.

'맛있는 음식은 이 세상 어머니의 수와 같다'라는 말이 있다. 어머니가 자식에게 먹이는 음식만큼 사랑과 정성이 담긴 음식은 없다는 말이다. 정성을 다해 준비한 음식을 사랑하는 사람, 어려운 이웃들과 나누어 먹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행복이 아닐까? '먹는다는 것'은 '사랑'을 나누는 일이다.

김동은 계명대 동산병원 교수(이비인후과)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