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여의도통신] 흥미로운 국정감사 자료들

박상전 기자
박상전 기자

국회 국정감사가 시작되면 정치부 기자들은 '자료와의 전쟁'을 치른다. 299명 국회의원이 신문에 내 달라며 보내는 국감 자료들이 하루 500통에 이를 때도 있다. 기자들은 평소보다 출근 시간을 당겨 메일을 일일이 뒤져 본 뒤 기사 가치를 구분한다. 본지 기자들은 대구경북 관련 자료를 우선한다. 중앙지는 전국 이슈를, 전문지는 해당 분야에 대한 기사만 선별해 한정된 지면에 반영한다.

하루 수백 통의 메일들은 언론에 실리는 것보단 '사장'되는 게 더 많다. 버려진 자료가 무가치하다는 말은 아니다. 꽤나 흥미 있고 반향도 예상되지만 당장의 관심사는 아닌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술을 몇 잔 마시고 음주운전을 하면 사망할 확률이 더 높으냐'는 자료는 일반인들 실생활과 밀접하나 국감 기간 중 어느 신문에서도 본 적이 없다. 한 국회의원이 제출한 국감 자료에 따르면 소주 2~4잔 마실 때의 사망률이 가장 높다. 주량과 사망률이 비례한다는 공식을 완전히 깨 버리는 중요한 자료였다.

국내 야구 경기가 너무 길다는 자료도 흥미로웠다. 내용은 이렇다. 국내 프로야구 경기 평균 시간이 미국·일본과 비교해 14분 정도 길다는 것이다. 바쁜 야구팬들을 위해 비디오 판독이나 투수 교체 시간 등을 단축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우리나라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지 않는 이유를 유추한 자료도 있었다. 자료에 따르면 최근 20년간 노벨상 수상자는 60대가 75%에 달하고, 노벨상을 타기 위해 평균 31년을 연구하지만 국내 여건은 그런 환경이 마련돼 있지 않다는 것이다. 자료는 '우수연구원에 대한 정년 연장'을 주장했다. 영화 같은 이야기도 국감 자료를 통해 알 수 있었다. 산업용 로봇에 외국인 노동자의 목이 끼어 사망한 사실이다.

국회는 10여 년 전 '페이퍼리스' (종이 없는) 국감을 천명했다. 자료를 만드는 데 들어가는 종이가 너무 많아 이메일 등 전자 문서로 대체하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최근 국회 기자실 앞에는 여전히 프린트된 국감 자료 용지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언론에 주목받지 못하고 사장되는 자료는 이면지로 처리되거나 소각돼 한 줌의 재로 변해 버린다. 밤새워 마련한 의원과 보좌진들의 땀방울도 덩달아 사라지는 일이 국감 기간 도중 매일같이 반복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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