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주의 일본에 진 빚을 갚자는 국채보상운동의 발의지인 대구광문사 터가 현재 알려진 곳과 다르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같은 논의는 (사)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주관으로 24일 열린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1주년 기념-광문사 조사연구 세미나’에서 나왔다.
국채보상운동은 1907년 1월 29일 출판사인 대구광문사 내 광문사문회 회명을 대동광문회로 고치는 특별회의에서 서상돈 광문사 부사장이 제의하며 시작됐다.
세미나에서 발표자로 나선 이진현 서울역사박물관 학예연구사의 ‘1907년 2월 대구광문사의 위치에 관한 연구’ 자료에 따르면 광문사는 현재 표지석이 설치된 대구 수창초교 후문 대성사 자리에 있었다는 근거는 확인되지 않았다.
지금까지는 박영규의 논문에 서술된 ‘대구읍성 서문 밖 달서교 부근에 있던 수창사에 국채지원급수합사무소를 설치했다. 수창사는 지금의 대구 수창학교 부근인 듯 하다’는 주장에 따라 광문사 위치를 특정했으나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개칭 특별회의 당시 대구광문사가 경상감영 내 취고수청(악사양성소, 현 중구 전동 7-1)을 빌려쓴 기록은 확인된다. 이 학예연구사는 백남준 당시 경상북도관찰사서리가 작성한 보고서와 대한매일신보 기사를 근거로 “1906년 1월 설립된 광문사는 같은해 5월 경상감영 내 취고수청으로 이전했다. 이듬해 3월 대구군수 겸 경북관찰사서리 박중양에 의해 쫓겨날 때까지는 머물렀다는 사실이 기록으로 확인된다”고 했다.
앞서 발표한 권상구 시간과공간 이사는 1907~1914년 지적원도와 2018년 현재 지적도를 중첩해 국채보상운동 대구군민대회가 열린 북후정 터와 취고수청 터, 달서교 부근 광문사 터 등 국채보상운동 거점지를 찾는 방안을 제기하기도 했다.
발표에 이어진 토론회에서는 현재 수창초교 뒤편과 대구콘서트하우스에 설치된 국채보상운동 기념 표지석을 하루빨리 옮겨야 한다는데 뜻이 모였다.
이경규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연구분과위원장은 “국채보상운동 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지 1년이 지났지만 행정 오류는 여전하다. 국채보상운동 기념비와 표지석을 옮기는 방안을 대구시에 적극 건의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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