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구 미문화원 폭파사건' 재심 34년 만에 대구지법에서 열려

변호인 “불법 구금과 고문으로 자백 받아내”
검찰 “폭파사건과 무관.. 통상절차에 따라 공소유지” 법정 다툼 예고

대구 미문화원 폭파사건에 대한 재심이 열린 25일 오전 대구법원 앞에서 당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던 재심 청구자들이 국가폭력과 인권침해 인정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왼쪽부터 박종덕, 함종호, 손호만, 故 우성수씨 부인 신성애, 안상학씨. 김영진 기자 kyjmaeil@msnet.co.kr
대구 미문화원 폭파사건에 대한 재심이 열린 25일 오전 대구법원 앞에서 당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던 재심 청구자들이 국가폭력과 인권침해 인정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왼쪽부터 박종덕, 함종호, 손호만, 故 우성수씨 부인 신성애, 안상학씨. 김영진 기자 kyjmaeil@msnet.co.kr

1983년 9월 22일 오후 9시 30분쯤 대구 중구 삼덕동 미국문화원(현 경북대병원 건너편) 건물 앞에서 가방에 들어있던 폭발물이 터졌다. 이 폭발로 1명이 숨지고 4명이 다쳤다. 당시 정부는 합동신문조를 꾸려 경북대 학생 5명을 용의자로 지목했고, 모두 유죄 판결을 받았다. 이른바 '대구 미 문화원 폭파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옥살이를 했던 함종호(61), 손호만(60), 박종덕(59), 안상학(56), 우성수(2015년 별세) 씨 대한 재심이 25일 오전 대구지법에서 열렸다. 1984년 법원이 유죄를 선고한 지 34년 만이다.

◆고문기술자 이근안이 20여일 동안 고문

20대 초·중반이었던 함 씨 등은 불법 구금된 채 20일 동안 한숨도 자지 못하고 혹독한 고문을 견뎌야했다. 고문기술자로 잘 알려진 이근안도 대구까지 출장 와 이들을 고문했다. 당시 복학을 앞두고 있던 손 씨는 고문을 견디다 못해 "군 복무 시절 폭발물 제조법을 익혀 단독으로 범행을 저질렀다"고 자백하기도 했다.

이들을 고문하던 중 부산에서 진범인 북한군이 잡히자, 당시 검찰은 이들을 국가보안법과 집회 및 시위법 위반으로 재판에 넘겼다. 이들은 각각 징역 1년 6개월에서 3년형을 선고받은 뒤 항소를 포기하고 옥살이를 하다 1984년 4월 특별사면으로 풀려났다.

세월 속에 묻힐 뻔한 사건은 2010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가 '진실규명 권고' 결정을 내리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과거사위원회의 결정에 용기를 낸 이들은 "경찰의 불법 감금과 고문, 가혹행위에 의해 사건이 조작됐다"며 2013년 재심을 청구했고 법원은 3년만에 청구를 받아들였다.

재심 공판을 앞두고 열린 기자회견에서 손 씨는 "법정에서 진실이 가려질거라 믿었는데 34년이나 걸릴 줄 몰랐다. 늦었지만 진실을 규명할 길이 열려 기쁘다"면서 "당시 수많은 사람이 강제 연행돼 고문을 받았다. 반드시 진상규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대구 미문화원 폭파사건에 대한 재심이 열린 25일 오전 당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던 재심 청구자들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왼쪽부터 박종덕, 함종호, 손호만, 안상학, 故 우성수씨 부인 신성애. 우성수씨는 2005년 사망해 부인이 대신 참석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msnet.co.kr
대구 미문화원 폭파사건에 대한 재심이 열린 25일 오전 당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던 재심 청구자들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왼쪽부터 박종덕, 함종호, 손호만, 안상학, 故 우성수씨 부인 신성애. 우성수씨는 2005년 사망해 부인이 대신 참석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msnet.co.kr

◆34년의 기다림 10분만에 끝난 재판… 검찰 법정다툼 예고

재심은 대구지법 제2형사단독(판사 장미옥)의 심리로 진행됐다. 검찰은 "손 씨 등이 이적 서적을 가지고 경북대 학생들을 모아 현저한 사회적 불안을 불러올 대규모 시위를 준비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손 씨 등의 변호인은 "불법구금과 고문 등을 통해 받아낸 자백을 토대로 형식적 재판 끝에 유죄가 인정됐으므로 재심에선 무죄가 선고돼야 한다"고 맞섰다.

34년을 기다린 재판은 10여분 만에 끝났다. 재판부는 증거기록 등을 보완해 한 차례 더 재판을 진행하기로 했다. 두 번째 공판은 다음달 22일 열릴 예정이다.

검찰 관계자는 "법정에서 다투는 건 이적 서적 소지와 이적 동조 등의 혐의이고, 대구 미문화원 폭파사건 자체와는 무관하다. 통상 절차에 따라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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