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년 9월 22일 오후 9시 30분쯤 대구 중구 삼덕동 미국문화원(현 경북대병원 건너편) 건물 앞에서 가방에 들어있던 폭발물이 터졌다. 이 폭발로 1명이 숨지고 4명이 다쳤다. 당시 정부는 합동신문조를 꾸려 경북대 학생 5명을 용의자로 지목했고, 모두 유죄 판결을 받았다. 이른바 '대구 미 문화원 폭파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옥살이를 했던 함종호(61), 손호만(60), 박종덕(59), 안상학(56), 우성수(2015년 별세) 씨 대한 재심이 25일 오전 대구지법에서 열렸다. 1984년 법원이 유죄를 선고한 지 34년 만이다.
◆고문기술자 이근안이 20여일 동안 고문
20대 초·중반이었던 함 씨 등은 불법 구금된 채 20일 동안 한숨도 자지 못하고 혹독한 고문을 견뎌야했다. 고문기술자로 잘 알려진 이근안도 대구까지 출장 와 이들을 고문했다. 당시 복학을 앞두고 있던 손 씨는 고문을 견디다 못해 "군 복무 시절 폭발물 제조법을 익혀 단독으로 범행을 저질렀다"고 자백하기도 했다.
이들을 고문하던 중 부산에서 진범인 북한군이 잡히자, 당시 검찰은 이들을 국가보안법과 집회 및 시위법 위반으로 재판에 넘겼다. 이들은 각각 징역 1년 6개월에서 3년형을 선고받은 뒤 항소를 포기하고 옥살이를 하다 1984년 4월 특별사면으로 풀려났다.
세월 속에 묻힐 뻔한 사건은 2010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가 '진실규명 권고' 결정을 내리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과거사위원회의 결정에 용기를 낸 이들은 "경찰의 불법 감금과 고문, 가혹행위에 의해 사건이 조작됐다"며 2013년 재심을 청구했고 법원은 3년만에 청구를 받아들였다.
재심 공판을 앞두고 열린 기자회견에서 손 씨는 "법정에서 진실이 가려질거라 믿었는데 34년이나 걸릴 줄 몰랐다. 늦었지만 진실을 규명할 길이 열려 기쁘다"면서 "당시 수많은 사람이 강제 연행돼 고문을 받았다. 반드시 진상규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34년의 기다림 10분만에 끝난 재판… 검찰 법정다툼 예고
재심은 대구지법 제2형사단독(판사 장미옥)의 심리로 진행됐다. 검찰은 "손 씨 등이 이적 서적을 가지고 경북대 학생들을 모아 현저한 사회적 불안을 불러올 대규모 시위를 준비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손 씨 등의 변호인은 "불법구금과 고문 등을 통해 받아낸 자백을 토대로 형식적 재판 끝에 유죄가 인정됐으므로 재심에선 무죄가 선고돼야 한다"고 맞섰다.
34년을 기다린 재판은 10여분 만에 끝났다. 재판부는 증거기록 등을 보완해 한 차례 더 재판을 진행하기로 했다. 두 번째 공판은 다음달 22일 열릴 예정이다.
검찰 관계자는 "법정에서 다투는 건 이적 서적 소지와 이적 동조 등의 혐의이고, 대구 미문화원 폭파사건 자체와는 무관하다. 통상 절차에 따라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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