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관내라는 표현은 곧 만리장성 안쪽, 한국에서 볼 때 산해관 안쪽 지역을 의미한다.
주로 상해와 북경, 그리고 후반기에 중경이 활동 무대였다. 중국 관내 지역 한국독립운동은 1910년대에 시작됐다. 1912년 상해에서 조직된 동제사가 출발점이 되고, 그 뒤에 신한혁명당(1915)과 신한청년당(1918) 등이 조직돼 독립운동의 터전이 마련됐다.
1919년 3·1운동의 계기를 마련한 곳도 상해이고, 3·1운동으로 표출된 국민의 뜻을 수렴하여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와 정부 조직체인 임시정부, 그리고 의회인 임시의정원을 수립한 곳도 바로 이곳이었다.
비슷한 무렵에 북경에도 독립운동가들이 집결했다. 다만 북경은 주로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을 반대하는 인물들이 포진했다.
나라 안팎의 독립운동계에 사회주의가 밀려들자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수립 직후 좌우합작체를 구성했다. 그러나 이것이 깨어지고 분화가 일어나자, 다시 나라 안팎에서 좌우합작운동이 일어났다.
국내에서 1926년에 일어난 6·10만세운동이 그 효시였고, 본격적인 좌우합작운동은 그 해 10월 안창호가 앞장서 북경에서 불을 붙였다.
그것이 유일당운동이다. 유일당운동은 중국국민당이나 소련공산당이 국가를 운영하듯이 하나의 민족정당을 만들어 국가문제, 민족문제를 해결하고 이끌고 가자는 것이다.
그 불씨는 한국 독립운동가들이 활동하는 중국 관내 지역 대부분에서 타올랐고, 이듬해 만주에 확산돼 유일당운동이 왕성하게 일어났으며, 국내에서도 신간회 운동으로 나아갔다.
상해에서 국내 6·10만세운동을 지원한 핵심 인물은 김단야(김천)였다. 유일당운동에는 배천택·장건상·김정묵의 활약이 돋보였다. 만주지역에서 펼쳐진 유일당운동에선 김동삼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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