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이나 규정을 만들 때는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사안에 대해 일일이 기술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법률이나 규정을 만들 때는 예측 가능한 일들을 포함하기 위해 문구를 다듬고, 예측하지 못한 일이 일어났을 때는 규정을 해석하여 적용한다. 예를 들어 다 허물어져 가는 다리에 지방자치단체에서 '승용차 출입금지'라는 팻말을 붙였는데 굴착기가 지나가다가 다리가 무너졌다고 하자. 굴착기 운전자는 팻말을 승용차가 아니면 출입 가능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규정된 것 외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해석하는 것은 '반대 해석'이라고 한다. 이런 해석이 나오는 것은 지자체에서 팻말을 붙인 취지를 분명히 하지 않고, 용어를 정확하게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12년 전 당시 야당이었던 한나라당은 사립학교법 개정에 반대하며 6개월 가까이 장외 투쟁을 벌였었다. 이때 쟁점은 한나라당에서는 개방형 이사를 추천할 수 있는 기관을 '학교운영위원회와 대학평의회 등'으로 규정하자는 것이고, 여당인 열린우리당에서는 사학 재단이 어용 기관을 동원하지 못하도록 '등'을 붙여선 안 된다는 것이다. 사소한 문제 같지만 '등'이 있다는 것은 앞에 제시한 것은 일종의 예시로 보는 것이고, '등'이 없으면 제시한 것만 해당한다는 것이기 때문에 글자 하나에 해석이 크게 달라진다.
올해 수능 수험생 유의사항 반입 금지 물품에 전자담배와 통신(블루투스) 기능이 있는 이어폰이 추가되었다. 원래의 규정에 휴대전화, 스마트 기기 '등'이 있기 때문에 추가된 규정은 예시를 추가한 것으로 큰 의미가 없는 것이다. 굳이 추가함으로써 '규정에 없는 새로운 기기로 부정행위를 하는 것은 가능하다' '전자담배는 안 되지만 그냥 담배는 가능하다'는 반대 해석의 논란만 일으킨다.(학교는 금연 시설이고, 수능 중에는 학교 밖을 나가지 못하지만 정작 반입 금지 물품에 담배는 없다.) '부정행위의 소지가 있는 통신 기능이나 데이터 저장 기능이 있는 물품'이라고 간단하게 제시하고 예시를 들었으면 훨씬 더 쉽게 적용할 수 있는데 말이다.
수능을 공정하게 치르기 위해서는 부정행위를 방지하는 것뿐만 아니라 학생들이 안전한 환경에서 시험을 치르게 하는 것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그렇다면 담배나 라이터와 같이 화재를 유발할 수 있는 물품, 흉기로 사용될 수 있는 물품, 시험에 방해가 되거나 안전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화학 물질 등에 대한 금지 규정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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