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돈 아까 500원짜리 줬는데 나머지 줘요." "네가 잘못 생각했다. 나는 500원을 받은 적이 없다."
50여 년 전, 10년 넘게 한 경북 예천의 우망초교 뒤 작은 초가집 문구점의 어느 날 아침, 주인과 학생이 주고받은 대화다. 1원, 5원, 10원짜리 동전이 쓰일 때고 500원짜리 동전은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다. 물건을 산 학생은 500원짜리를 주었다는데, 주인은 받지 않았다고 했으니 결국 학생은 '시멀큼하게'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그날 저녁, '돈 통을 쏟아서 미직 미직 깐주리는데 500원짜리가 한 개 나왔다.' 공책 한 권이 100원 정도 할 때니 '아이들 돈으로는 제법 큰돈'이었다. 주인은 '큰일 났구나' 했으나 그 학생을 기억할 수도, 찾을 수도 없었다. 1, 2년쯤 지나 주인 가족은 대구로 이사했고 이사 전까지 그 학생은 다시 나타나지 않았으니 말이다.
올해 86세의 류우순 할머니가 지난 세월 가슴속 회한의 옛 사연의 글을 고향 소식지에 올렸다. 최근 나온 향토지 '낙동춘추' 제3호에 이를 실은 할머니는 '지금은 한 50여 세 조금 더 되지 않을까' 짐작될 '코흘리개 학생'의 '어린 것이 얼마나 상처가 크고 깊었을까' 하며 '지금까지 아파하고' 진심의 사과와 함께 학생의 연락을 바랐다.
"그 학생이 누구인지 혹시라도 알게 되거든 전화라도 한 번 주세요. 그때 정말 미안하고 또 미안하고 열 번, 백번 사과할게요. 정말 미안해요."
할머니의 가슴 저린 사연과 회한 잔뜩한 '참회록'이 더욱 돋보이는 까닭은 지금 우리 사회를 휘젓고 다니는 나랏돈 빼먹기와 판을 치는 세금 도둑 소식이 끊이지 않아서다. 이런 흐름에는 공사(公私)가 한 몸이다. 환경부 출신으로 환경공단을 점령한 '환피아'처럼 관료 퇴직자가 나랏일을 좀먹는 뭇 이름의 '피아'가 강시처럼 배회하고, 유치원 비리가 말하듯 어긋난 백성들도 사복(私腹) 채우기 바쁘다.
조선의 문인 이옥의 말처럼 '어디를 가든 아름답지 않은 곳이 없고, 누구와 함께하든 아름답지 않은 곳이 없다'는 우리 강산의 이 가을에 류 할머니와 같은 따뜻한 마음과는 사뭇 다른 사람들이 어찌 이리도 많을까. 할머니의 바람이 꼭 이뤄지길 빌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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