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노포 이야기] ②영주 '스쿨서점'

경북 최장수 서점…64년째 시민의 ‘마음의 휴식처’

1954년 문을 연 스쿨서점은 경상북도 노포기업으로 선정됐다.
1954년 문을 연 스쿨서점은 경상북도 노포기업으로 선정됐다.

스쿨서점
스쿨서점

"어렵지만 문화공간으로 역할을 다할 것"이라고 말하는 송태근 스쿨서점 3대 사장. 박노익 기자 noik@msnet.co.kr

서점은 지식에 목말랐던 한국사회에서 가장 사랑받는 장소였다. 일제강점기에는 선진문물에 대한 갈증을 해소해주는 우물터 같은 곳이었고, 영상매체와 인터넷이 지식의 생산과 유통을 담당하기 시작한 199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동네 사랑방 같은 곳이었다. 서점은 또 데이트 장소였다. 가진 돈이 없던 시절. 서점은 친구나 연인을 만나는 단골장소였다. 이 책 저 책 마음껏 읽을 수 있으니 좋고, 기다리는 사람이 좀 늦게 와도 책을 실컷 읽었으니 그리 화낼 일도 없었다. 그런 서점이 사라지고 있다. 그러나 수십 년 동안 굳건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서점도 있다.

◆경북 최장수 서점…전성기 5개 지점 운영

스쿨서점(경북 영주시 영주1동)은 그런 서점이다. 1954년 문을 연 경북에서 가장 오래된 서점으로 영주 학생들의 학창 시절 추억과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1, 2층 벽면은 온통 책 천지다. 사람 한 명이 간신히 지나다닐 만큼의 공간을 제외하고 바닥부터 천장까지 온통 책으로 둘러싸여 있다. 스쿨서점 사서이면서 관장, 책 공급자인 송태근(51) 대표는 이렇게 말한다. "요즘은 사람들이 책을 안 사기도 하지만, 버리기도 잘한다. 책을 귀하게 여겨주면 좋겠어요."

송 대표는 스쿨서점의 3대 사장이다. 고(故) 김휘룡(1954~1972년까지 운영) 씨가 1대 사장, 아들인 김시태(76·1972~2009년까지) 씨가 2대 사장, 송 대표는 2010년 1월부터 서점을 인수해 스쿨서점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

1954년 개점 당시 스쿨서점은 단층 건물이었다. 아버지의 강권으로 서점을 이어맏은 2대 사장 시태 씨는 선친과 달리 공격적인 경영을 했다. 서울 종로서적(5층)을 본 따 4층으로 건물을 신축, 복층 서점으로 변신시켰다. 1980년대에는 영주, 안동, 의성, 봉화, 충북 제천 5곳에 지점을 둘 만큼 호황을 누렸다. 송 대표에 따르면 당시 스쿨서점은 늘 '전국 최초'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녔다고 했다. "당시 다방에도 없던 에어컨을 서점에 들여놨다. 냉방기기가 있는 곳이 거의 없을 때라 여름이면 학생들과 시민들이 늘 북적거렸다. 또 서적 관리 전산화를 위해 PC를 들여놓은 것도 전국 서점 중 최초였다"고 했다.

스쿨서점을 드다들던 인물들도 많다. 대표적 인물이 홍사덕 전 국회의원이다. 홍 전 의원은 중학교 때부터 스쿨서점의 단골로 엄청나게 들락거리며 책을 사보고 공부했다고 한다.

위기도 있었다. 1961년 사라호태풍이 전국을 강타해 스쿨서점도 피해를 입었다. 서점은 물에 잠겼고, 책이 둥둥 떠다녔다. 송 대표는 "당시 서점 안 책이 대부분 물에 잠겼는데 다행히 출판사에서 무상으로 책을 교환해줘 위기를 넘겼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승승장구 거침이 없었던 스쿨서점도 1980년대 말 학원자율화 바람에 주춤거렸다. 서점 매출의 70% 이상을 차지하던 참고서류 판매가 급감했기 때문이다. 1990년대 말부터는 대형서점과 인터넷으로 설 자리가 좁아졌다.

2009년, 김시태 대표는 나이도 있고 서점 경영이 힘들어지자 서점을 접으려고 했다. 자식들도 이어받으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버지가 가꾼 서점을 하루아침에 닫는다는 것이 용납되지 않았다. 때마침 젊은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이웃에서 샘터서점을 운영하고 있는 송태근 씨였다. 그의 성실성을 가까이서 지켜봐왔던 터라 주저하지 않고 송 대표에게 서점을 넘겼다.

◆"어렵지만 문화공간으로 역할을 다할 터"

송 대표는 망설이지 않고 김 대표가 내미는 손을 잡았다. 김 대표는 송 씨에게 권리금 한 푼 요구하지 않았다. 송 대표는 인수 후 고객 위주의 서점으로 바꾸는 등 경영을 혁신했다. 2층에는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은 물론, 앉아서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자리도 만들었다. 송 대표의 합리적인 경영으로 매출도 늘어 3년 만에 물건(책)값을 모두 갚았다. 송 대표는 "2010년은 나에게 꿈이 이루어진 해"라고 당시를 회고했다.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책을 읽지 않은 사회적 분위기와 함께 출판 상황도 변했다. 학생 수도 줄어들고 있었고, 입시제도도 변했다. 송 대표는 "스마트폰 탓에 시민이나 학생들이 책을 멀리하고, 매출도 전성기보다 절반으로 줄었다"고 했다. "한때 영주에는 10여 곳의 서점이 있었지만, 지금은 절반으로 줄었다"며 "앞으로 그마저도 점점 줄어들게 될 것"이라며 우려했다. 지난해에는 전국을 강타한 송인서적의 부도로 어려움을 겪었다. 지금까지도 그 여파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고 했다. 그래서 요즘은 다품목 소량 판매 위주로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송 대표는 매장에서 스마트폰으로 책을 촬영한 뒤 인터넷으로 주문하는 고객의 모습을 보면 마음이 편치 않다고도 했다. 그러나 송 대표는 경북 최장수 서점을 운영한다는 자부심으로 단순히 책을 파는 서점이 아니라 독서 문화를 널리 퍼뜨리는 서점으로 키워나갈 것이라고 했다. "스쿨서점은 영주는 물론, 경북의 자랑이다. 백발이 성성한 어르신들이 가끔 고향을 찾았다가 스쿨서점 간판을 보고는 서점 안에 들어와 제 손을 꼭 잡고 학창시절을 이야기하면서 '추억 어린 장소가 그대로 있으니 정말 반갑고 지켜줘 고맙다'는 격려를 들을 때면 더욱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송 대표는 서점을 경영해서 돈을 번다는 생각은 애시당초 갖지 않았다고 했다. "아무리 세태가 변해도 서점 하나 없는 도시는 상상할 수 없다"며 "서점이 책만 파는 시대는 지났다. 단순히 돈벌이 수단이 아니라 문화공간으로 역할을 다하는 서점으로 꾸려나갈 것"이라고 했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