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욕망 너머의 한국 고대사/ 지은이 젊은역사학자 모임/ 서해문집 펴냄

이 책은 주관적, 자의적인 역사해석으로 한국 고대사에 많은 논란을 부채질하고 있는 사이비역사가들을 비판하는 책이다. 사진은 한국 고대사에서 초기 백제수도 위례성의 실체를 최초로 확인시켜준 서울 풍납토성. 서해문집 제공
이 책은 주관적, 자의적인 역사해석으로 한국 고대사에 많은 논란을 부채질하고 있는 사이비역사가들을 비판하는 책이다. 사진은 한국 고대사에서 초기 백제수도 위례성의 실체를 최초로 확인시켜준 서울 풍납토성. 서해문집 제공

고대사처럼 '주관'이 득세하는 학문 영역도 드물다. 자료가 부족하고 고증이 힘들기 때문에 개인의 가치나 사관이 과잉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 고대사에서 오랜 동안 일부 사이비역사학자들의 이런 주관적, 자의적 역사해석은 많은 논란을 빚어왔다.

'사이비 역사'란 '역사학과 비슷하게 보이기 위해 흉내를 내지만 학문 본령에서는 벗어난 가짜 학문이자 가짜 역사를 말한다. '유사(類似)역사학' 혹은 '의사(擬似)역사학'이라 부르기도 하지만 어떻게 지칭하든 대상을 학문의 범주에 포함시킬 수 없다는 의미는 동일한 것 같다.
우리나라의 사이비역사학은 서투른 국수(國粹)주의나 쇼비니즘과 밀접하게 결합돼 있다는 점에서 특히 큰 위험성을 안고 있다. 사이비역사학은 위대한 역사와 거대한 영토를 강박적으로 선호하며, 민족적 자부(自負)를 강조하며 이를 윤리적 당위로 제시한다. 여기에 조금이라도 회의적인 태도를 보일 경우에는 '친일 식민사학'이라는 낙인과 함께 공격을 가한다. 상대를 친일파라는 '절대악'으로 규정하는 것은 매우 효과적인 선동 수단이기 때문이다. 이 수법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른 사이비역사학은 일부 팬층을 업고 실제로 광범위한 대중화에 성공했다.

◆뒤틀린 욕망으로 역사 왜곡 사이비역사 비판
이 책은 한국 고대사 분야에서 뒤틀린 욕망으로 역사를 왜곡한 사이비역사학은 물론 민족주의와 제국주의에 물든 역사까지 비판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현재의 필요에 따라 사료를 해석하고 대중을 선동하려는 욕망이 그 비판의 대상이다. 이 책을 집필한 '젊은 역사학자'들은 이러한 욕망을 걷어 내고 당시의 눈으로 바라볼 때 균형 잡힌 한국 고대사로 나아갈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이 책은 2017년 '사이비역사학'을 비판하는 '한국 고대사와 사이비역사학'을 출간해 대중의 관심을 끌었던 '젊은역사학자모임'이 출간하는 두 번째 책이다. 첫 책 출간 후 젊은역사학자모임은 한 주간지에 '진짜 고대사'라는 이름으로 일곱 차례에 걸쳐 글을 연재했다. 이 책은 그 연재물을 포함해, 지면에서 미처 다루지 못했던 내용을 보완하고 저자를 추가해 펴낸 결과물이다. 첫 책이 좀 더 전문적이고 학술적인 분석과 비판을 시도했다면, 이 책은 그러한 전문성을 유지하면서도 대중성을 더해 독자들의 관심을 끈다.
이러한 사이비역사학에 맞서 젊은역사학자들은 고대사의 시간 순서에 맞게 주제를 골고루 선별하고, 각 주제의 연구자들이 자신들의 전공을 살려 해당 내용을 다루는 방식을 택했다. 특히 저자들은 사료와 유물 등을 적극 활용해, 역사 연구의 기본 방법에 따라 내용을 서술함으로써 독자들에게 재밌으면서도 깊이 있는 역사를 보여 준다.

◆11장에 걸쳐 한중일 고대사 논점 한눈에 정리
1장과 2장은 고조선과 낙랑군을 주제로 삼고 있다. 여기에서는 잘못된 해석으로 '단군신화'를 왜곡하거나, 엉터리 사료 활용으로 낙랑군 위치를 왜곡하는 사이비역사학의 문제를 지적하면서 다양한 사료와 유물을 해석함으로써 그에 맞선다.
3장에서는 처음 발견되었을 때부터, 비문 조작 의혹과 논쟁까지, 광개토왕비 연구의 역사를 다루었다. 이를 통해 한국과 중국, 일본으로까지 이어지는 '역사전쟁'의 모습을 보여 준다.
4장과 5장은 각각 백제의 '요서 진출설'과 '칠지도'(七支刀)를 통해 백제의 역사를 다룬다. 먼저, 교과서에도 실릴 만큼, '해양 강국 백제' 이미지를 만들어낸 백제 요서 진출설을 다룬 4장에서는 다양한 사료를 통해 이 문제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설명한다. 이어서 칠지도를 통해 들여다본 백제와 왜의 관계 해석 부분에서는, 한일 양국에서 이뤄진 칠지도 연구의 역사를 적절히 비교·분석해 보여 준다.
6장과 7장에서는 신라가 집중적으로 다뤄진다. 삼국통일 과정에서 신라의 상황과 역할을 사료를 활용해 큰 틀에서 설명한 6장에 이어, 7장에서는 역사 다큐멘터리 등에서 다루어졌던, 신라 김씨 왕조가 흉노의 후예라는 주장에 대해 어떻게 사료를 분석하고 해석해야 하는지를 이야기한다.
고대사 분야에서 주요 논쟁거리인 임나일본부설은 8장에서 집중적으로 다룬다. 몇 해 전 큰 화제가 되었고, 아직도 해석에 관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어서 9장에서는 한·중·일 학계의 발해사 연구 과정과 내용을 살펴보면서, 제국주의 중심 역사에서 벗어나자고 이야기한다.
10장에서는 교과서를 비롯해 대중에게 각인된 고대국가의 전성기에 대한 이야기를 각종 지도와 함께 풀어낸다. 끝으로 11장에서는 고대사 연구자가 아닌, 현대사 연구자가 '환단고기'와 군부독재의 연관성을 비판한다. 그 이유는 현대사에서 다루는 시기인 군부독재 시기 때 '환단고기'가 반공주의와 민족주의에 활용되었고, 이 과정에서 사이비역사학이 힘을 얻었기 때문.
기경량 가톨릭대 교수는 서문에서 "사이비 역사학이 지금처럼 확산되고 영향력을 발휘하게 된 것은 애초에 우리 사회가 쇼비니즘에 면역력이 약한 사회이고. 지난 수십년간 한국의 역사 교육이 과거에 대한 지적 호기심,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목적으로 이루어졌다"며 "그 결과 학문적으로 터무니없이 조급한 주장을 하는 국수주의에 쉽게 설득 되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말았다"고 분석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사이비 역사학이 득세한데 대한 기존 역사학계, 역사교육학계의 책임도 일정부분 인정하고 그런 반성 위에서 올바르고 객관적인 사관을 정립하고 이 성과를 시민들과 소통하기 위한 젊은 역사학자들의 역작이다. 352쪽. 1만8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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