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가 '스트롱맨의 전성시대'다. 지난달 28일(현지시간) 남미의 대국 '브라질'에서 펼쳐진 대선 결선투표에서 극우 성향의 '자이르 보우소나루'(63)가 승리함으로써 세계 각국을 휩쓰는 '스트롱맨 돌풍'을 이어갔다.
'스트롱맨'(strongman)은 사전적으로 독재자나 철권 통치자를 의미하지만, 최근에는 강경 극우 보수파 지도자라는 의미로 확장돼 쓰이고 있다. 이들의 공통점을 간단하게 정리하면 자국의 이익을 철저히 우선시하고, 외교적 절차와 예식에 구애받지 않는 특징이 있다. 또한 직설적인 화법을 즐겨 사용하고 강한 남성성을 드러내는 국가 지도자란 점이 두드러진다.
◆갈수록 확산되는 스트롱맨 돌풍
이번 브라질 대선을 통해 대통령에 당선된 보우소나루는 일찌감치 '브라질의 트럼프'라는 별칭을 얻으며 남미 역사상 가장 급진적인 지도자로 언론에서 평가한다. 그는 올해 초만 해도 사실상 브라질 정계의 아웃사이더였다. 하지만 그는 과격하고 극단적인 언행을 통해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는 여성을 비하하고 인종이나 동성애, 난민, 원주민을 차별하는 발언을 하는 한편 과거 군사독재정권(1964∼1985년)을 옹호하며 독재 시절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려 했다.
그의 발언을 보면 "난 독재를 찬성한다.", "우리는 민주주의를 통해서는 국가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투표를 통해서는 이 나라를 바꿀 수 없다. 내전을 통해서만 바꿀 수 있다", "고문을 찬성한다" 등 적나라한 내용이 다반사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지난 30여 년간 유지돼온 브라질 민주주의가 위태로울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한다.
스트롱맨의 탄생은 브라질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이미 세계 강대국을 비롯해 가장 안정적으로 민주주의가 정착한 유럽에서조차 스트롱맨의 탄생에서 예외가 아니다. 특히 한국을 둘러싼 세계 4강의 통치자가 공교롭게도 모두 스트롱맨이다.
스트롱맨의 대표적인 인물은 뭐니뭐니해도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다. 그는 기존 오바마 정부 정책에 반감이 컸던 하층 백인 노동자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등에 업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는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며 세계 경찰국가를 자임했던 미국의 세계주의를 포기하고 고립주의와 보호무역주의를 내세우고 있다. 또한 반(反) 이민정책과 인종차별, 여성 비하 등도 트럼프에게서 떠올릴 수 있는 용어들이다. 격화되는 미중무역전쟁도 미국 이익을 위해서는 갈등과 반목을 서슴지 않는 우선주의가 낳은 산물이라는 지적이다.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 또한 스트롱맨의 대표 주자다. 이른바 '시황제'로 불리며 과거 중국의 집단지도체제를 무너뜨리고 무소불위의 권력 1인자로 군림하고 있다. 그 또한 '중화민족의 부흥'을 내세우며 미국을 제치고 'G1'의 야심을 드러내고 있다. 막강한 경제력과 군사력을 바탕으로 주변 국가들을 압박하면서 이들 국가와의 마찰도 잦다. 러시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도 장기 집권하며 과거 소련의 위상을 찾으려고 애쓰고 있으며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도 전쟁이 가능한 국가로의 전환을 줄기차게 시도하고 있다.
유럽에서는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대대적인 국방예산 확대를 꾀하고 EU에서의 발언권을 높이려고 하는 등 '강한 프랑스'를 표방하며 스트롱맨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 밖에 터키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과 필리핀의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 등도 스트롱맨 대열에 끼고 있다,
스트롱맨의 잇단 등장은 전 세계적으로 '우파 포퓰리즘' 바람과도 괘를 같이 하고 있다. 이 같은 흐름이 선명한 곳이 유럽과 남미다. 폴란드와 헝가리, 오스트리아에 이어 지난 3월 서유럽 국가 최초로 이탈리아에서 극우 포퓰리즘 정권이 탄생했다. 북유럽 복지국가 스웨덴에서조차 신(新)나치 운동에 뿌리를 둔 '스웨덴 민주당'이 제3당으로 원내에 진입하며 좌파 중도 성향의 사회민주당은 위협받고 있다.

남미 역시 이번에 극우 성향의 보우소나루 후보가 브라질 대통령에 당선된 것을 비롯해 아르헨티나, 칠레, 파라과이, 콜롬비아의 집권 세력도 강경 보수진영으로 넘어가고 있다.

◆약한 경제는 강력한 카리스마 원한다?
세계적인 입장에서 보면 이 같은 스트롱맨들의 등장은 그리 달가운 현상은 아니다. 이들은 대중에게 세계화에 대한 반감을 파고들어 민족주의를 자극하고 결국 세계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는 자극제가 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서구 민주주의 시스템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리는 현상으로도 보고 있다. 이들은 자국 우선주의를 최우선으로 여기기 때문에 다자간 협력체계를 흩트리고 다른 나라와의 갈등을 심화시킨다. 또한 강경한 난민 정책과 이민 정책 등을 통해 인권주의에 반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 이는 한반도 주변 4강에 끼어 있는 우리나라도 십분 느끼는 부분이다.
그렇다면 스트롱맨이 탄생하는 배경은 뭘까. 뭐니뭐니해도 경제 문제를 꼽을 수 있다. 경기 침체 속에서는 이념보다는 실리, 민주화보다는 카리스마를 원하는 대중의 심리가 반영된 결과라는 분석이다. 우리나라도 경기 침체가 지속되면서 일각에서는 '독재를 했지만 경제를 활성화시켰다는' 박정희 향수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실제 스트롱맨이 등장한 국가들은 대체로 눈에 띄는 경제 성과를 내고 있고 장기 집권하는 경우가 많다.
아베 일본 총리는 '아베노믹스'를 강하게 밀어붙여 일본 경제를 '잃어버린 20년'에서 탈출시켰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2013∼2016년 글로벌 경기 둔화 속에서도 연평균 국내총생산(GDP) 증가율 7.2%를 달성했다.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도 집권 10년간 연평균 4.5%의 경제성장을 이뤘으며 터키를 제조업 및 수출 강국으로 키워냈다. 2001년 터키의 경제성장률이 -5.7%였음을 감안하면 대단한 반전이다. 오르반 빅토르 헝가리 총리도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에서 헝가리를 조기 졸업시켰다. 미국 또한 트럼프 대통령 집권 후 최근 들어 전무후무한 경제 호황을 이끌어내고 있다.
스트롱맨들의 등장 이유를 한계에 부딪힌 서구민주주의에서 찾는 시각도 있다. 세계적으로 민주주의로 인해 오히려 경제 불평등이 심화되고 중산층이 붕괴되면서 1%가 부를 독점하는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민주주의와 자유주의가 모든 국민을 행복하게 만들 수 없다는 생각이 점차 퍼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런 가운데 독재에 대한 반감도 과거보다 희석되고 있다. 독재 국가라는 비판을 받는 중국과 러시아에서조차 대규모 피의 숙청이나 정치수용소 같은 강압적 통치는 사라지고 대중 지지를 바탕으로 한 독재를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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