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가 돌아가신지 4개월이 다 되어간다. 늘 내 걱정하시던 할머니인데, 살아생전 마지막으로 뵌 후 아직 꿈속에서도 뵌 적이 없다. 이렇게 많이 그리워하는 것을 알면 꿈에라도 한번쯤은 나타나셨을텐데.

하늘나라로 가기 전, 할머니는 루게릭병을 앓고 계셨다. 병세가 중증이지는 않아, 가벼운 일상생활은 가능했으나 걷는 것이 힘드셨다. 내게는 부모님과 같은 분이라 떨어져 살았지만, 특정 요일을 기억하고 매주 찾아뵜다. 물론 지키지 못할 때도 많았다.
돌아가신 그날도 뉴스를 보고 내 걱정에 평소와 같이 전화를 하셨다. 저녁을 먹으로 오라고 하셨는데, 시계를 보니 퇴근시간이라 차가 많이 막힐 것 같아 내일 간다고 하고 끊었는데 그게 마지막 통화였다. 돌아가신 할머니 전화기를 보니 그렇게 나에게 마지막 전화를 하시고 저녁도 드시지 않은채, 평소 늘 말씀하시던 대로 품위있게 주무시며 하늘나라로 가셨다.
'인간은 태어나면 죽는다'는 누구나 아는 사실을 태어나면서부터, 40년 동안 곁에 있는 사람의 존재가 없어졌을 때 비로소 머리로 아는 지식이 사실이었다는 것을 뼈저리게 알았다.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 인간은 늙는다. 희귀병이 진행되면 죽음에 이른다. 이런 일반적인 지식을 알고 있으면서도, 주위에 항상 존재하는 것들에게도 예외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 것 같다.
춤을 배우고 있는 고등학생이 이렇게 물은 적이 있다. "선생님! 인생은 두루마리 휴지 같아서, 뒤로 갈수록 더 빨리 풀린다고 하던데 맞나요?" 순간 머리가 띵! 했다. 그 때, 선뜻 답을 하지도 못했다. 그런데 할머니와의 인연 끝에 서서 돌아보니, 40년이 이렇게 짧은데, 88년 할머니 삶 끝에서 돌아보면 그 세월이 얼마나 빨리 흘러갔으리라 생각해봤다. 개인적인 일상은 그대로지만, 어떤 존재가 있느냐 없느냐에 대한 삶의 질감은 전혀 다른 것 같다.
대구시립무용단에 근무했었던 10년 동안 할머니는 나의 모든 공연을 대부분 보러 오셨고, 무용단 소식이 신문에 나면 오려두었다고 주시곤 했다. 고운 단풍과 야외공연이 많은 이 계절에 공연을 하다가 관객으로 오시는 할머니들을 볼 때, 문득 문득 날 사랑했던 우리 할머니 생각이 더 났다.
벌써 11월이다. 달력도 한 장 밖에 남지 않았다. 존재하지만 항상 옆에 있어서 때론 소중함을 잊고 있는 사람이 지금 내 옆에 있지는 않은지 돌아봤으면 한다. 그들과의 인연이 과거 함께 했던 시간보다 앞으로 함께 할 시간이 조금은 적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아련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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