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청소년기를 보내고 한국으로 돌아와 현재 대학에서 일본어와 일본 문학을 가르치고 있는 지은이가 풀어내는 일본 이야기다. 일본을 잘 아는 한국인이 한국적 시각으로 들여다보는 일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우리 한국인들에게 일본은 이중적일 때가 많다. 시기하면서 부러워하고, 멀리하고 싶은 동시에 가까이 하고 싶은 나라다. 한국인들이 관광차 가장 많이 찾는 나라가 일본이고, 다른 나라와 스포츠 경기에 지는 것은 괜찮지만 일본에 지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는 나라이기도 하다. 지은이 고선윤 교수(백석 예술대)는 질시나 부러움의 대상이 아닌, 사람이 사는 공간으로써 일본을 이야기 한다.
◇ 여기서도 저기서도 '스미마센' 무슨 말?
일본 사람들에게는 '스미마센(すみません)'이라는 말이 입에 붙어 있다. 길을 가다가 살짝 스쳐도 '스미마센', 가게에 들어가서 '나 좀 보세요' 하고 말을 걸 때도 '스미마센'으로 시작한다. 지하철에서 발을 밟은 사람도, 발을 밟힌 사람도 '스미마센'이라고 한다. '스미마센'은 무슨 말일까?
지은이는 "이때 스미마센은 '밟혀서 죄송합니다', '밟아서 죄송합니다'가 아니라, '저기요, 발 좀 치워주세요'라는 말이자, '아이구, 죄송합니다'는 말"이라고 설명한다.
우리는 물건을 헤프게 쓰거나 돈을 흥청망청 낭비할 때 '물 쓰듯 한다'는 말을 한다. 같은 상황에서 일본 사람들은 '더운물 쓰듯 한다(湯水のように使う)'라고 말한다. 지은이는 "온천이 많은 나라인지라 물이 아니라 더운물이라고 하는 것 같다" 면서 "하지만 일본 사람들은 물 쓰듯 물을 쓰지 않는다. 지독하게 재사용을 하고 아낀다."고 덧붙인다.
◇ "목욕은 단순히 몸을 씻는 이상의 의미"
일본에서 '목욕'은 단순히 몸을 씻는다는 의미를 뛰어넘는다. 아버지가 퇴근해서 집으로 돌아오면 "다녀오셨습니까"라는 인사말 다음 "식사부터 하실래요, 아니면 목욕을 하실래요"라는 대화가 이어진다. 습하고 끈적끈적한 날씨, 달리 몸을 녹일 곳이 없는 일본에서 목욕은 먹을거리만큼이나 절실한 것이다. -222쪽-
지은이는 "일본의 목욕 역사는 불교와 관련이 있다. 원래 불상을 씻는 것에서 시작됐는데, 승려들이 심신을 깨끗이 하기 위해 욕당을 마련하고, 승려들이 입욕한 뒤에는 가난한 이웃들과 환자, 죄수들에게 개방했다. 그래서 일본에서 목욕은 병을 예방하고 복을 부르는 하나의 풍속이 되었다"고 말한다.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했을 때, 일본 황실은 도치기현 소재 나스별장의 목욕탕을 인근 피해 주민들에게 개방했다. 일본 사람들은 이를 '헤이세이 시욕'이라고 부른다. 현 아키히토 천황의 연호가 헤이세이므로, '헤이세이 시욕'이란 헤이세이 천황이 베푼 커다란 은혜를 뜻을 담고 있다.
◇ 정권은 바뀌어도 황실은 바뀌지 않는 나라
옛날 중국 사람들은 황제가 하늘을 대신해서 세상을 통치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황제가 덕을 잃으면 천명에 따라 왕조의 성이 바뀌었다. 역성혁명이 일어나 새 왕조가 탄생하고 새로운 권력자가 등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일본 천황의 자리는 힘으로 빼앗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천손강림 신화에서 비롯된 천황가는 혈연으로만 계승 가능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본 역사에서 천황의 존재가 뒷방으로 물러난 적은 많았지만 천황가는 없어지지 않았다.(일본 전국시대). 현재도 일본은 총리가 국가를 이끄는 최고 지도자이지만, 일본인들에게 정신적 지주로 황실은 여전하다.
설령 어떤 권력자가 나와 천황가를 없앤다고 해도, 그 스스로 천황을 자처할 수는 없다. 그런 이유로 일본 천황가는 동일 왕조가 개창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이어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왕가다. -231쪽-
◇ 글과 사진을 따라 걸어보는 일본의 이곳저곳
일본을 소재로 출판된 책은 많다. 이 책은 일본과 한국 두 땅에 삶의 뿌리를 내리고 있는 사람이 썼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요네무라 고이치 마이니치 신문 부부장(전 서울지국장)은 "고 선생의 이야기는 단순히 여행하는 것만으로는 얻을 수 없는 일본의 문화와 습관에 관한 깊이 있는 지식을 독자가 얻을 수 있도록 이끈다. 일본인인 나에게도 외부의 눈, 한국의 눈으로 일본을 바라본 이 책은 새로운 발견으로 가득하다." 고 말한다.
책 중간중간에 실린 흑백사진도 읽는 재미를 더한다. '일본' 하면 금방 떠오르는 종류의 사진이 아닌, 일본인과 나무, 골목 등을 잔잔히 담은 사진은 지은이의 글과 닮았다. 글과 함께 사진을 음미하면 어딘가 낯설고 거리감 있던 일본이 '삶의 장'으로서 좀 더 선명해짐을 느낄 수 있다.
◇ 일본의 모습과 함께 지은이의 삶도 확인
어떤 책을 읽는다는 것은 그 책이 전하는 메시지를 접하는 과정인 동시에 글쓴이를 들여다보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 책은 일본의 문화, 역사, 정치, 사회상 등을 담고 있지만, 동시에 지은이의 고유한 주관성을 담고 있다. 몰랐던 일본을 발견하는 동시에 따뜻하고 쾌활하고 호기심 많은 '고선윤'이라는 사람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시종일관 유쾌하고 사려 깊은 지은이의 시선은 일본을 경쟁과 경계의 대상이 아닌, 동아시아 공동체 속에서 함께 어우러져야 할 이웃 나라로 만든다.
▷ 지은이 고선윤
부모님을 따라 초등학교 5학년 때 일본으로 가 동경한국학교 초등부와 일본 공립 중고등학교를 다녔다. 귀국해서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를 졸업하고 계몽사 편집부에서 근무했다. 한국외국어대 대학원에서 1000년 전 일본 헤이안 시대 문학을 전공해 박사 학위를 받았다. 백석예술대 외국어학부 교수로 있다.
293쪽, 2만5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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