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법, 종교·양심적 병역거부 '무죄'…14년 만에 판례 뒤집혀

재판부, 종교적 신념을 ‘소극적 양심실현의 자유’로 인정

1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1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종교적·양심적 병역거부 인정' 판결을 받은 당사자 오승헌씨가 소감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군대 입영을 거부하는 이른바 '양심적 병역거부' 가 형사 처벌 대상이 아니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양심·종교적 신념을 정당한 병역거부 사유로 인정하지 않았던 2004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14년 3개월 만에 뒤집힌 것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1일 병역법 위반으로 재판에 넘겨진 오모(34) 씨에 대한 상고심에서 대법관 다수의 의견으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무죄 취지로 사건을 창원지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관 중 9명은 무죄, 4명은 유죄 의견이었다.

오 씨는 2013년 7월 현역 입영통지서를 받은 뒤 입영일로부터 3일이 지나도록 입영하지 않은 혐의로 기소됐다. 현행 병역법은 현역 입영 또는 소집통지서를 받은 사람이 정당한 사유 없이 입영하지 않거나 소집에 불응하면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돼 있다.

1일 오전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병역법 위법 관련 선고를 위한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김명수 대법원장이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1일 오전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병역법 위법 관련 선고를 위한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김명수 대법원장이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여호와의 증인 신도인 오 씨는 "종교적 양심에 따라 입영을 거부한 것으로, 정당한 사유가 있다"고 주장했지만 1, 2심 모두 유죄 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대법원은 오 씨가 병역거부 사유로 내세운 종교적 신념을 '소극적 양심실현의 자유'로 인정했다. 재판부는 "일률적으로 병역의무를 강제하고 불이행에 대한 형사처벌 등으로 제재하는 것은 소수자에 대한 관용이라는 자유민주주의에 반한다. 종교·양심적 병역거부는 병역법에서 규정한 정당한 병역거부 사유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대법원은 또한 무분별한 병역거부가 이뤄지지 않도록 종교·양심적 병역거부가 정당한 병역거부 사유에 해당하는지에 대한 판단기준을 제시했다. 재판부는 "삶의 일부가 아닌 전부가 그 신념의 영향력 아래 있어야 하고, 좀처럼 쉽게 바뀌지 않는 신념이어야 하며, 상황에 따라 타협적이거나 전략적이지 않은 신념이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병역거부자가 내세운 병역거부 신념이 '깊고 확고하며 진실한 신념'인지는 피고인의 가정환경, 성장과정, 학교생활, 사회경험 등 전반적인 삶의 모습도 살펴 판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1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양심적 병역거부 관련 대법원 판결에 대한 입장 발표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1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양심적 병역거부 관련 대법원 판결에 대한 입장 발표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이에 대해 김소영·조희대·박상옥·이기택 대법관은 "기존 법리를 변경해야 할 명백한 규범적, 현실적 변화가 없음에도 무죄를 선고하는 것은 혼란을 초래한다"고 반대의견을 냈다.

이번 판결을 계기로 현재 대법원과 하급심에서 심리 중인 종교·양심적 병역거부 사건들에도 무죄가 선고될 전망이다. 지난달 31일 현재 대법원에 계류 중인 관련 사건은 227건이다.

다만 대법원 판결은 재판이 진행 중인 사건에만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이미 유죄 확정판결을 받은 경우에는 구제받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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