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흥]사람은 가을 타고 푸른 소나무는 단풍철 타네-청송

막바지 주왕산 단풍 서둘러야
주왕산 말고도 볼거리는 넘쳐

물 위에 비친 왕버들 그림자가 마치 물속에 또 한 그루의 나무가 자라고 있는 듯, 만산홍엽 단풍과 수면에 피어오르는 물안개가 어우러져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이채근 기자 mincho@msnet.co.kr
물 위에 비친 왕버들 그림자가 마치 물속에 또 한 그루의 나무가 자라고 있는 듯, 만산홍엽 단풍과 수면에 피어오르는 물안개가 어우러져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이채근 기자 mincho@msnet.co.kr

가을이 깊다 했더니 겨울 오는 속도가 하루하루 다르다. 시간 체감 속도엔 가속이 붙었다. 계절의 객관적 지표라는 단풍 색깔로도 측정할 수 없을 지경이 됐다. 단풍이 떨어지고 있다. 단풍시즌도 끝물이다. 단풍이 가고 나면 곧 겨울이다. 또 1년이 지나간다.

나뭇가지만 드러낸 활엽수들이 드문드문 보이던 게 불과 며칠 전이었다. 며칠 전 단풍놀이 다녀온 이웃의 자랑이 허풍이었나 싶을 정도로 '좀 더 일찍 올걸' 하는 후회가 든다. 뭐든 마음먹었을 때 해야 한다는 걸 단풍을 보고 각성한다.

일말의 기회가 남았다면 청송을 권한다. 면적의 80% 이상이 산이다. 사방을 둘러봐도 산뿐이므로 드라이브로도 그럭저럭 단풍놀이를 할 수 있다. 늦가을에 출하를 시작한 사과도 붉은 빛이 새콤달콤하다.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색깔을 보기엔 제격인 곳이다.

한때 대한민국 대표 오지 'BYC(봉화, 영양, 청송)'로 불리며 내륙의 골짜기로 손꼽히던 청송이다. 천천히 즐기며 살자는 구호 '슬로 시티'가 효자 관광 상품이 될 줄이야. 이제는 오지 순위에서 봉화와 영양에 밀린다. 대구에서도 1시간 30분이면 간다. 주왕산 말고도 볼거리가 풍부하다는 게 뜻밖의 난제다. 하루로 모자란다.

만산홍엽과 거대한 암벽이 병풍처럼 둘러져 절경을 이룬 청송 주왕산은 많은 등산객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다.이채근 기자 mincho@msnet.co.kr
만산홍엽과 거대한 암벽이 병풍처럼 둘러져 절경을 이룬 청송 주왕산은 많은 등산객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다.이채근 기자 mincho@msnet.co.kr

◆아! 주왕산

신기한 깃발바위, 기암이다. 주왕산 상의주차장에 닿기도 전이다. 망망대해를 표류하다 육지를 발견한 것처럼 "육지다"라고 외치고 싶을 정도지만, "우와" 소리밖에 안 나와서 안타까운 기암이다.

주차를 하고 발걸음을 옮기며, "하산하고 꼭 식사하러 오시라"며 식당가에서 주는 생수를 받고, "인삼튀김 하나에 2천원"이라는 냄새를 맡으면서도 시선만은 기암을 놓치지 않는다. 가까이에서 보니 단풍에 둘러싸여 절경이다. 소나무마저 단풍에 휩싸였으니 기암이야 오죽할까.

주왕산 초입의 대전사와 기암(旗岩)이 어우러져 절경을 이루고 있다.이채근 기자 mincho@msnet.co.kr
주왕산 초입의 대전사와 기암(旗岩)이 어우러져 절경을 이루고 있다.이채근 기자 mincho@msnet.co.kr

대전사 앞에서 문화재보호구역 입장료 명목의 '통행료'를 내기 전부터 고개는 전방 30도를 향했다. 누군가가 거기를 보기 시작해 누구나 따라 보는 군중심리가 아니었다.

대포 여러 대를 세로로 세워놓은 듯한 기암의 배치는 주왕산의 대표 절경이다. 이미 봐 버린 이상 까짓것 입장료 3천원에 주춤거리지 않는다. 코앞에서 볼 때까지 계속 들어간다.

대전사를 본체만체 기암을 향해 나간다. 청송군을 비롯해 여러 매체가 깃발바위, 즉 기암(旗岩)이라 강조하는 '기암단애(旗岩斷崖)'다. 지구과학 교과서에서나 봄직한 한자어인 '기암단애'를 쉽게 풀어쓰면 '깃발바위 절벽' 정도가 된다. '기이할 기'를 써 기암(奇巖)으로 표기하는 이들이 적잖은데 굳이 그렇게 써도 틀린 말은 아니다. '신기한 바위 절벽'이라 불러도 무관한 것이, 정말이지, 볼 때마다 신비함에 압도되기 때문이다. '저건 어떻게 만들어진 걸까'라며 학문적 호기심이 절로 생긴다.

◆기암이란?

여기서 잠깐,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은 기암(旗岩)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전설인데 중국 당나라 때 주도(周鍍)라는 사람이 스스로 후주천왕(後周天王), 즉 '주왕'이라 칭하고 진나라의 재건에 나섰으나 실패. 이후 주왕산으로 숨어들어 옴. 당나라가 주왕을 잡아달라 요청. 신라는 마일성 장군을 보냄. 굴에 숨어 있던 주왕을 찾아내고 주왕산의 첫 봉우리에 깃발을 꽂음'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깃발바위'다. 지구과학적 설명으로는 '백악기 주왕산 일대에서는 아홉 번 이상의 화산 폭발이 있었음. 뜨거운 화산재가 쌓이고 끈적끈적하게 엉겨 붙으면서 굳어짐. 이렇게 만들어진 암석이 바로 용결응회암. 뜨거운 용결응회암이 급격히 식을 때 수축이 일어나면서 세로로 틈이 생겼는데, 이 틈을 따라 침식이 일어나 지금과 같은 단애를 이루게 되었다'가 된다.

기암괴석과 계곡이 조화를 이룬 주왕산 용추협곡에서 많은 여행객들이 만추를 즐기고 있다.이채근 기자 mincho@msnet.co.kr
기암괴석과 계곡이 조화를 이룬 주왕산 용추협곡에서 많은 여행객들이 만추를 즐기고 있다.이채근 기자 mincho@msnet.co.kr

◆주왕산 대표 절경

​주왕산의 대표 절경은 세 곳의 폭포와 절골계곡, 그리고 주산지로 압축된다. 대전사에서 시작한 발걸음은 초심자를 위해 용추폭포에서 멈추는데 여기까지만 해도 편도 2.2km 남짓이다. 이쯤 오면 오래된 사진 속 할아버지 세대들의 사진 촬영 포즈가 떠오른다. 타임캡슐을 뜯은 양 기억이 비교적 말끔하게 나는 이유는 현재의 우리도 같은 자세로 사진을 찍고 있기 때문이다. 협곡의 좁은 길을 오르려는 이들과 내려가는 이들에게 통로를 터줘야 했기에 하나같이 일렬종대로 서서 찍을 수밖에 없었던 거란 걸, 양보의 미덕이 담긴 사진 포즈였단 걸 사진을 찍어보고서야 안다.

용추폭포에 이르기까지 학소대와 시루봉 감상을 마쳤을 터. 용추협곡 사이에서 인생샷을 남기고도 체력이 남아 있다면 용연폭포까지 가보자. 1.2km를 더 올라가야 한다. 체력 안배를 위해 용연폭포에 닿은 뒤 돌아가는 길이 3.4km라는 점도 한 번 더 기억해둬야 한다.

지나가는 가을이 아쉬운듯 주왕산 절골의 단풍이 붉게 빛나고 있다.이채근 기자 mincho@msnet.co.kr
지나가는 가을이 아쉬운듯 주왕산 절골의 단풍이 붉게 빛나고 있다.이채근 기자 mincho@msnet.co.kr

절이 있던 골짜기, 절골계곡도 놓치기 아까운 단풍 명소다. 지금은 단풍이 많이 떨어졌다. 덕분에 계곡 물에 떨어진 단풍은 꽃이 흐드러지게 핀 것처럼 물 위에서 피어났다. 수량이 많아 여름에 제멋을 더 뽐내는 절골계곡에는 이런저런 카메라를 멘 이들이 물에 떨어진 낙엽과 단풍을 찍으러 가다 서다를 반복한다.

청송 주산지에는 수면위로 피어오르는 물안개와 왕버들,만산홍엽을 카메라에 담으려는 사진작가들로 붐비고 있다.이채근 기자 mincho@msnet.co.kr
청송 주산지에는 수면위로 피어오르는 물안개와 왕버들,만산홍엽을 카메라에 담으려는 사진작가들로 붐비고 있다.이채근 기자 mincho@msnet.co.kr

조선 경종 때인 1721년 완공된 농업용 인공 저수지 주산지는 사진작가들의 성지가 된 지 오래다. 해가 오르기도 전 새벽임에도 호호 손을 불어가며 모여들 있다. 물안개에 휩싸인 주산지를 담으려 중요 포인트에 자리를 잡는다. 20여 그루의 왕버들 고목이 물속에 뿌리를 내리고 있어 시쳇말로 '그림이 되는' 곳이어서다. 물 속 왕버들과 물가의 나무가 수면에 반사되고 물안개까지 더하면 완벽하다. 가을이면 주위의 단풍이 조연 역할을 한다.

◆주왕산만 보고 가기엔 아쉬워

주왕산만 보고 떠나기엔 아쉬운 청송이다. 각자 사정과 취향에 맞게 고를 수 있도록 정리해봤다. 전시관, 미술관, 체험장이다. 특히 체험장은 미리 연락하고 가야 한다.

당진영덕고속도로 청송IC에서 가까운 곳에 청송한지장이 있다. 경북무형문화재 제23호 이자성 한지장이 운영하는 곳이다. 공방에서 삶기, 씻기, 말리기, 다리기 등 12가지 과정을 거쳐 전통한지 만들기 체험을 할 수 있다. 문의=(054)872-2489.

청송한지장 북쪽에 있는 진보면에는 옹기 제작 체험장이 있다. 역시나 경북무형문화재 제25호 이무남 옹기장이 운영하는 곳이다. 무심한 장독대인 줄로만 알았던 옹기의 비밀을 알아볼 기회다. 문의=010-2666-9005.

옹기체험장 바로 맞은편에 청송이 낳은 소설가 김주영의 객주문학관이 있다. 옛 진보제일고 건물을 고쳐 만들었다. 김주영 작가의 육필 원고와 그의 기록물들을 느껴볼 수 있는 공간이다. 문의=(054)873-8011.

진보에서 34번 국도를 타고 영덕 방면으로 오면 야송미술관과 신촌약수를 만난다. 동청송·영양IC와 가깝다. 야송미술관은 폐교인 옛 신촌초교에 청송 출신 동양화가 이원좌의 작품을 전시한 곳이다. 길이 46m, 높이 6.7m의 '청량대운도'가 볼 만하다. 신촌약수가 야송미술관과 지척이다.

주왕산에서 청송읍내로 가는 길에 큰 리조트가 하나 들어서 있는데 그 인근에 심수관도예전시관, 청송백자전시관, 수석꽃돌박물관이 몰려 있다. 전북 남원에 있는 심수관도예전시관이 청송에도 있냐고 하겠지만, 일단 좋은 질문이다. 정유재란 때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 도공, 심당길의 본향이 청송이라 여기도 세웠다.

수석꽃돌박물관은 세계지질공원을 떠올리면 이해가 빠르다. 말 그대로 예쁜 돌들이 모여있는 곳이다. 선캄브리아기, 쥐라기, 백악기, 신생대 제3기 등에 형성된 화성암, 퇴적암, 변성암 등이 청송에 널려 있는데 이것들이 꽃돌의 원천이다.

이곳저곳 왔다갔다 피로가 쌓였다면 청송읍내 주왕산온천관광호텔에 있는 솔기온천에 들를 만하다. PH 9.1의 알칼리성 중탄산나트륨천으로 피부미용과 신경통, 류마티스성질환, 근육통, 피부질환 등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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