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를 주문하니 빨대가 따라 나온다. 잠시 망설여진다. 쓸까, 말까? 빨대 하나 쓰는 것에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면 너무 예민한 반응일까? 올해 8월부터 정부가 외식업소에 대해 일회용 컵 규제 정책을 시행했다. 별 생각 없이 쓰던 일회용품들이 어느새 불편한 존재가 된 것은 분명해 보인다. 불편한 뉴스들도 눈에 띈다. 한국의 15배 정도 크기라는 태평양의 거대 쓰레기 섬(90%이상이 플라스틱으로 된) 보도에는 충격을, 빨대가 코에 박혀 아파하던 바다거북에 대한 보도에는 미안함을 느낀다. 『양철곰』 이야기 끝에 눈물이 핑 돈 것은 나도 모르는 사이 가해자의 길에 합류했던 스스로에 대한 부끄러움 때문은 아니었을지.
『양철곰』은 그림책이다. 글 없이 그림으로만 이야기를 전하는 이 책의 작가 이기훈은 2009년 CJ 그림축제, 2010년 볼로냐 국제 어린이 도서전 일러스트레이터로 선정되었다. 그린 책으로는 『오바마 대통령의 꿈』, 『라니』 등이 있다.
그저 표지그림에 이끌려 『양철곰』을 집어 들었다. 무채색에 가까울 만큼 색은 절제되어 있고 섬세한 선들이 곳곳을 빼곡히 채우고 있다. 적막하고 황폐한 느낌마저 든다. 무심히 책장을 넘겼다. 그런데 정신을 차려보니 마지막 장에 다다라 있었다. 한편의 애니메이션을 본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칸칸이 끊어진 듯 이어진 장면들을 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머릿속에서 빈 공간이 채워지며 영상이 되어 눈앞에 펼쳐졌다. 그림만 있으면 뭔가 부족할까 싶었지만 음향, 대사까지 오히려 제약 없이 내 안에서 더욱 풍성해졌다.
책의 첫 장면. 도시 전체가 한 눈에 보인다. 집들이 빈틈없이 들어서있는 삭막한 도시 풍경. 그 사이로 두 팔을 벌린 채 서 있는 양철곰이 조그맣게 보인다. 클로즈업 된 장면을 보니 사람들과 대치중이다. 얼마 남지 않은 숲 앞을 막고 서 있는 양철곰과 항의하는 사람들. 결국 남은 숲마저 개발되고 도시는 점점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으로 변모해갔다. 사람들은 새로 발견한 황금별로 이주했고, 버려진 도시에는 이제 떠나지 못한 사람들과 양철곰만이 남겨져 있다. 그런데 양철곰이 이상한 행동을 한다. 강물을 제 몸에 계속 끼얹는다. 양철로 만들어진 기계 곰. 물을 끼얹는 것은 그야말로 자살행위다.
왜 그런 행동을 할까? 한 아이가 양철곰에게 다가가 같이 떠나자고 설득하지만 양철곰은 도리어 자신의 몸을 부숴버린다. 외면당한 아이도 등 돌린 양철곰도 슬픔의 무게는 같아보였다. 녹슨 양철은 결국 와르르 무너져 내린다. 아이의 눈물처럼 비가 쏟아져 내렸고 무채색의 도시와 부서진 곰의 기계 잔해들이 모든 것이 끝났다고 말하는 듯했다. 그런데 무언가가 꿈틀댔다. 부서진 양철곰 사이로 새싹이 돋기 시작했다.
감동이 밀려옴과 동시에 여러 감정이 뒤엉켰다. 현대의 환경문제와 오버랩 되며 씁쓸해진다. 우리가 미래의 양철곰을 희생시키고 있는 것은 아닐까. 혼자서 고집스럽게 한 길만을 걸어 간 양철곰. 위대한 영웅이다. 그러나 영광이 가득한 영웅이 아닌 쓸쓸한 영웅이다. 우리 스스로에게 죄책감과 분노마저 일게 한다. 위대한 영웅보다 한사람, 한사람 작은 영웅들이 더욱 간절해지는 지금이다.
최유정 학이사 독서아카데미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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