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세계대전에서 프랑스가 입은 인적 손실은 엄청났다. 18세에서 27세의 프랑스 남성 4분의 1이 사망했다. 이런 끔찍한 경험 때문에 독일이 전쟁 준비에 들어가고 있음에도 프랑스에서는 '어쨌든 전쟁은 안 된다'는 맹목적 평화주의가 지배했다. 이를 주도한 인물 중 하나가 프랑스 교사 노동조합 지도자 조르주 라피에르였다.
그는 1차 대전 참전 용사들을 기리는 당시 교과서를 '호전적 교과서'라고 낙인찍고 퇴출 운동을 벌였다. 그러나 프랑스에도 그에게도 평화는 오지 않았다. 프랑스는 단 6주 만에 나치 독일에 무너졌고, 라피에르는 나치에 저항하는 운동을 벌이다가 체포돼 다하우 강제수용소에서 죽었다.
맹목적 평화주의는 영국도 마찬가지였다. 옥스퍼드 대학의 토론클럽인 '옥스퍼드 유니온'이 1933년 히틀러가 정권을 잡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어떤 상황에서도 국가와 국왕을 위해 싸우기를 거부한다'고 선언한 것은 이를 잘 보여준다.
이런 평화주의는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 소설가 H. G. 웰스, 문예비평가 킹슬리 마틴 등 지식인들이 주도했다. 그들의 논리는 어처구니없었다. 영국이 군사력을 줄이면 어떤 나라에도 위협이 되지 않을 것이고 따라서 다른 나라도 영국과 전쟁을 할 동기를 갖지 않게 된다는 것이었다. 2차 대전은 이런 순진한 희망을 산산조각 냈다.
내가 무기를 내려놓으면 평화를 얻는 게 아니라 오히려 적의 손쉬운 먹잇감이 되기 십상이라는 사실은 인류 역사가 잘 말해준다. 이런 꼴을 당하지 않으려면 누군가는 반드시 무기를 잡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이른바 '양심적 병역 거부자'는 윤리적 무임승차자이다. 전쟁이 없어지지 않는 한(그럴 가능성은 매우 낮다) 그들의 양심은 그들을 대신해 총을 잡는 누군가의 희생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양심도 진정으로 '양심적'이지 않은 것 같다. 대법원이 양심적 병역 거부가 정당하다는 판결을 내린 뒤 인터넷에 '여호와의 증인' 가입 문의가 늘고 있다고 한다. 이를 접하면서 옥스퍼드 유니언의 선언에 "참으로 한심하고 치졸하고 수치스러운 고백이며…불온하고 역겨운 시대의 징후"라고 한 처칠의 개탄(慨歎)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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