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종교칼럼]메멘토모리

각정스님

출가하지 않고 불교를 신행하는 남성 신도를 거사(居士)라고 한다.

거사를 손꼽으면 3대 거사가 있는데 인도의 유마힐과 중국의 방온, 그리고 우리나라에 부설거사가 있다.

방 거사는 처자를 이끌고 오두막을 전전하며 모든 재물과 재산을 배에 싣고 동정호에 내다 버렸다. 짚신과 죽제품을 만들어 생계를 유지하였으나 가족 누구도 불만을 말하지 않았다. 아내와 자식은 모두 수행자가 되었다.

거사는 가족 자랑을 노래로 말했다.

"아들 있어도 장가 안 들이고, 딸은 시집 안 가니, 온 식구 이렇게 둘러앉으면, 무생(無生)의 이야기로 시간을 잊는다."

무생은 생기거나 없어지는 세계가 아니다. 변화 없는 불생불멸의 진리를 말한다. 세속에 있으면서도 청정한 가정생활을 이루며 도인의 삶을 살았다.

마침 방 거사가 임종을 앞두고 딸 영조에게 유언을 남겼다.

"인생이란 꿈과 허깨비 같은 것이다. 너는 인연을 소중하게 여기도록 해라." 그리고 지금이 몇 시진 쯤 되었나 밖에 나가 알아보도록 일렀다. 밖에 나갔던 영조가 돌아와 말했다. "벌써 정오가 돼야 하지만 일식 중이어서 확실치 않으니 아버님이 직접 나가 보시지요." 라고 하였다. 그래서 거사가 밖에 나가 보았으나 일식도 아니어서 이상하게 여겨 방으로 돌아오니 어느덧 딸이 합장한 자세로 숨을 거둔 뒤였다. 이를 보고 방거사가 웃으며 "내 딸이지만 민첩하군"

방 거사는 딸의 장례를 위해 죽음을 연기했다. 그가 죽을 때 마침 그 고을 양양태수 우적이 찾아왔다. 우적은 그의 친구이자 사법 제자였고 '방거사어록'을 편찬한 사람이다.

사람을 보내 어머니에게 딸의 죽음을 알렸다.

"늙은이의 장례도 안 지내주고 먼저 가다니" 딸을 원망한 방 거사 아내가 아들에게 이 소식을 전했다.

부음을 듣자마자 아들은 '앗'하고 외마디 소리를 지르고 괭이로 땅을 짚고 선 채로 숨을 거두었다.

며칠 뒤에는 노파마저 어디론가 사라지고 자취를 감추었다.

"앉아서 죽고, 서서 죽는(坐脫立亡)것을 자유자재로 해낸 방 거사 가족의 사례는 선문에 회자되는 드문 이야기이다.

어느 날 방거사가 혼자 말처럼 중얼거렸다.

"어렵고 어렵구나 불법이여"

그의 부인이 이 소리를 듣고

"쉽고도 쉽네, 백가지 조사의 뜻"

이번에 딸 영조가 거들었다.

"어렵지도 않고, 쉽지도 않구나. 허기지면 밥 먹고, 졸리면 잠자는 것"

깨달음을 구하는 수행은 어렵고도 어렵다고 한다. 모두 그것에 발목이 잡힌다. 그때마다 무엇을 얻었다는 생각이 방해가 된다.

쉽고도 쉽다는 것은 세수하다 코만지는 것처럼 어렵지 않다는 것이다.

온갖 사물에는 무상의 진실이 그대로 드러나서 진리 아닌 것이 없다. 자기의 본래 모습이었기에 쉽고도 쉽다고 말 한 것이다.

허기지면 밥 먹고 곤하면 자는 것은 누구나 하는 일이다. 셋으로 갈리기 이전의 원점에서는 분별과 차별이 없음을 선언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사실 세 사람은 한통속이다. 그렇기 때문에 무생(無生)임을 드러낸 것이다.

죽음과 생은 존재의 형태가 바뀌는 것이니 그런 이치가 우리의 삶과 죽음을 차별하지 않는 것이다.

삶과 죽음이 하나라는 자각에 장자는 다음과 같이 선언하였다.

"대지는 육신을 주어서 나에게 짐을 지우고, 그리고 삶을 주어 고달프게 한다. 늙음을 주니 나는 편안하고, 죽음을 주리니 나는 쉬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삶이 좋은 것이라면, 죽음 또한 좋은 것이다."

스토아 철학의 거장 미셀드몽테뉴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은 자유를 미리 생각하는 것이다."

죽음은 죽는 법을 배우는 가을이다.

청련암 암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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