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사만어] 어느 노부부의 기부  

석민 선임기자

석민 선임기자
석민 선임기자

얼마 전 한 일간지에 소개된 80대 할머니의 사연이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이 할머니는 88세 병든 할아버지와 함께 평생을 일군 400억원대 재산을 대학에 기부했다. 손수레 과일 장사로 시작해 42년 전 서울 청량리에 처음 건물을 샀고, 그 이후 옆 건물을 계속 사들여 엄청난 부를 일구었다.

그러나 많은 부동산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삶은 우리의 평범한 할머니·할아버지처럼 힘겨움의 연속이었던 것 같다. 적은 밑천에 은행 등으로부터 빚을 얻어 재산을 일구다 보니 재산은 늘었지만 원리금 갚느라 고생이 많았다. 할머니도 지난 삶의 모습을 "이자 갚는다고 죽을 둥 살 둥 살았다"고 표현했다.

가슴 뭉클하다. 평생을 바쳐 일군 삶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는 전 재산을 자기 자신과 애지중지하는 혈육을 제쳐놓고 사회를 위해 전부 내놓는다는 것은 보통 사람이 따라 하기 힘든 어려운 결정이다. 제발, 기부받은 대학이 할머니·할아버지의 뜻을 제대로 잘 받들길 간절히 바란다.

솔직히 필자가 꿈꾸는 우리 사회의 모습은 이와는 조금 다르다. 김밥 할머니 등 평생 고생하시면서 자기희생만 해왔던 어르신들이 전 재산을 사회에 내놓는 걸 보고 감동과 더불어 안타까움을 함께 느꼈다. "1인당 소득 3만달러 시대를 사는 우리가 '기꺼이' '염치없이(?)' 김밥 할머니의 돈을 받아야만 하는가?" 하는 물음이 생겼다.

우리 사회는 급속한 경제 발전에 따라 상당한 부를 축적한 수많은 자산가들이 있고, 평범한 생활인이라고 하더라도 내 이웃과 사회를 위한 조그만 나눔이 큰 부담이 되지 않는 수준의 경제생활을 누리고 있다. 기부가 일생의 과업이 아니라, 우리 일상적인 삶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각자의 형편과 사정에 맞는 돈의 기부와 재능 나눔이 생활 그 자체가 되는 그런 사회를 필자는 꿈꾼다. 특정 몇몇 사람의 희생과 헌신에 의해 유지되는 그런 사회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모두를 위해 함께 사는 사회를 꿈꾼다.

김밥 할머니는 어렵게 모은 재산으로 늘그막에 인생의 행복과 즐거움을 맘껏 누리시다가, 그 유산을 할머니의 뜻을 받들어 자녀들이 사회에 기부하도록 했으면 좋겠다. 희생과 헌신의 감동보다, 나눔과 봉사가 생활이 되며 모두 함께 행복해 할 수 있는 세상이 진짜 선진사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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