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고] 중앙도서관과 국채보상운동 아카이브

이근자 소설가

이근자 소설가
이근자 소설가

얼마 전 언론에서 대구 중앙도서관의 존립 방식에 관한 소식을 읽었다. 국채보상운동기념회 측은 도서관을 리모델링하여 국채보상운동 아카이브관(박물관)으로 건설하고, 그 안에 도서관 기능을 유지한다고 했다. 도서관 측의 설명으로는 기능을 유지한다는 내용이 도서관을 축소하는 것이라고 했다.

어떤 기능을 중심에 두느냐의 문제다. 나는 도서관이 주가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기념관이란 공간은 그것을 연구하는 학자나 관계자 또는 시험문제를 풀기 위해 학생들이 견학 가는 곳이란 선입견을 버릴 수 없다. 마치 고인 물처럼 정체된 분위기를 풍긴다. 자료를 아무리 풍성하게 전시했다 하더라도, 현재적 시간을 담지 않은 과거 공간의 재현 혹은 그 시간의 제자리걸음 같아서일 것이다. 우리가 역사를 알고자 하는 것은 그곳에서 현재의 답을 구하고 그걸 바탕으로 미래가 발전하기를 바라서이다.

나는 국채보상운동이란 단어를 들으면 절로 몸이 들썩여진다. 110여 년 전의 그 옛날, 나랏빚을 갚기 위해 의롭게 일어선 힘없는 백성이 된 기분이다. 유일한 재산인 금가락지를 빼서 아이들 손을 잡고 길을 나선 가난한 촌부. 백성들이 내놓은 수북이 쌓인 패물과 곰방대들을 아이에게 보여주는 것, 어미가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교육이었을 것이다.

내년에 100주년이 된다는 대구 중앙도서관. 나는 고등학생 때 도서관에 처음 갔다. 이후 오랫동안 그곳을 무척 애용했다. 시험 기간에 친구들과 들락거렸고, 혜윰회라는 독서클럽 회원이었으며, 시민과 함께하는 작가세미나를 열었다. 내게 아이가 생기자 어린이자료실을 들락거렸으며, 수시로 책을 빌렸고, 시청각실에서 영화를 봤으며, 책 나눔 행사에도 참여하는 등 열거할 자리가 부족할 정도로 도서관을 이용하고 있다.

도서관과 국채보상운동기념관. 두 기관이 합쳐진다면 문화콘텐츠가 늘어날 것이다. 그만큼 나를 비롯해 시민들이 향유할 프로그램도 다양해질 것이다. 또한 국채보상운동 기록물은 중앙도서관을 이용하는 시민에게 많이 알려질 테니 일거양득이라 할 수 있겠다.

내겐 도서관과 국채보상운동기념관 사이 공간에서의 소중한 추억도 있다. 2002 한일 월드컵 중계방송을 시청한 일이다. 커다란 전광판 앞, 잔디밭에서 시민 수백 명과 함께 붉은악마가 되어 대한민국을 외치던 그 시간, 짝짝 짝 짝짝. 익숙한 장소에서 한 색다른 경험이었다.

한 장소에서 시간의 힘은 어떻게 발휘될까. 누군가에겐 100년의 속도가 저장돼 있을 것이고, 어떤 것은 하루의 속도를 110여 년 동안 쌓았으리라. 그 시간의 가로 겹과 세로의 켜들. 개인적인 기억은 한공간에서의 체험이 누적되다가 특별한 시간과 만나 특정한 사람과 관련한 이야기가 결합되면 영원성을 지닐 수밖에 없다. 나는 시간과 공간을 가로지르는 사람들의 속도에 관심이 많다. 그것이 역사의 수레바퀴라 부르는 우리의 이야기일 것이다.

이제 국채보상운동기념관과 도서관 주변은 새로 단장을 하려 한다. 그 변모가 상실이어서는 곤란하다. 공간과 시간을 허물지 않고 더 첨가해, 더욱 생동감 있고 깊이 있는 문화공간으로 거듭나기 바란다. 그렇게 된다면 시간의 겹이 더욱 풍성해지겠다. 좋은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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