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종문의 한시산책] 날다람쥐 양식으로 좀 남겨두네 [摘果(적과)] 김창협

이종문 계명대 한문교육과 교수
이종문 계명대 한문교육과 교수

산 속 과일, 가지 수도 참 많은데 山果非一種(산과바일종)

서리를 맞고 나자 달고도 향긋하네 霜餘溢甘芳(상여일감방)

나무꾼 따라다니며 그걸 따가지고 와서 行隨樵子覓(행수초자멱)

숲 속 스님과 앉아 함께 맛을 보네 坐共林僧嘗(좌공임승상)

높은 넝쿨 달린 것까지 다 따오진 아니하고 高蔓摘未盡(고만적미진)

날다람쥐 양식으로 좀 남겨두네 留作鼪鼯糧(류작생오량)

조선 후기의 시인 농암(農巖) 김창협(金昌協: 1651-1708)의 작품이다. 작품 속의 화자는 잘 익은 산 속 과일들을 고생스럽게 따가지고 와서, 숲 속 스님과 함께 앉아 먹는다. 그러니까 이 시에는 나눔의 문화가 깃들어 있다. 작품 속의 화자는 또한 산 속 과일들을 몽땅 싹쓸이해 오지 않고, 날다람쥐 양식으로 좀 남겨둔다. 그러니까 이 시에는 자연에 대한 배려의 문화가 깃들어 있다. "찬 서리/ 나무 끝을 나는 까치를 위해/ 홍시 하나 남겨둘 줄 아는/ 조선의 마음이여" 김남주 시인의 시 '옛 마을을 지나며'의 전문이다. 자연을 위하여 배려도 좀 할 줄 아는 마음, 그것이 바로 '조선의 마음'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요즈음은 어떤가? 봄철이 되면 우리나라 산에는 몸에 좋다는 산나물을 뜯으려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그리하여 마침내 우리나라 산에는 산나물의 씨가 마를 지경이다. 가을철이 되면 우리나라 산에는 도토리를 줍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그리하여 마침내 우리나라의 다람쥐들은 눈보라 휘몰아칠 겨울철을 앞두고 그야말로 전전긍긍(戰戰兢兢)이다.

"아득한 옛날의 무슨 전설이나 일화가 아니라 요 근년에 비구니스님들이 모여 공부하는 암자에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노비구니스님이.... 다람쥐 두 마리가 도토리를 물고 돌담 속으로 뻔질나게 들락거리는 것을 보게 되었지요. "옳거니! 돌담 속에는 도토리가 많겠구나. 묵을 해 부처님께 공양 올리고 먹어야지. 나무아미타불." 이렇게 중얼거린 노비구니스님이 돌담을 허물어뜨리고 보니 과연 그 속에서는 도토리가 한 가마는 좋게 나왔지요. 그런데 그 한 가마나 되는 도토리를 몽땅 꺼내어 묵을 해 먹었던 다음날 아침에 보니 그놈의 다람쥐 두 마리가 노비구니스님의 흰 고무신을 뜯어먹고 있었답니다. 그 흰 고무신을 뜯어먹다가 죽었답니다" 시조시인 조오현 스님의 '절간 이야기 3'의 일부다. 흰 고무신을 뜯어먹다가 다람쥐가 두 마리나 죽는 나라, 그런 나라는 국민소득이 제아무리 높아도 선진문화국가는 아니지 싶다. (시인·계명대 한문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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