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모든 일이 순리대로 흘러가는 평범한 진리가 뒤집어질 때 우리는 익숙한 모든 것들로부터 깨어난다. 그것이 소설일 때는 무거우면서도 매력적이다. 20세기 후반 영국을 대표하는 소설가 도리스 레싱은 2007년 여든여덟 살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1988년 발표한 『다섯째 아이』도 레싱의 저력을 보여주는 낯선 인간의 또 다른 경험이다.
데이비드와 해리엇은 평범하면서도 정상적인 청춘 남녀이다. 그들에게 행복이란 결혼해서 '적어도 애는 여섯 명 혹은 여덟 명' 이상 낳고, 또 그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넓고 큰 집을 마련하는 것이다. 두 사람은 런던에서 떨어진 소도시에 거대한 빅토리아풍의 집을 발견하고는 행복한 미래를 위한 완벽한 공간이라고 확신한다. 보증금도 마련할 처지가 못 되지만 아버지의 도움으로 그 집에서 결혼생활을 시작한다. 이어 루크, 헬렌, 제인, 폴, 네 자녀를 낳으며 그들은 스스로 행복한 생활을 만끽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행복은 너무나 완벽해서 그 누구도 깰 수 없다고 여겼다.
그러나 다섯 째 아이, 벤을 임신하면서 그들의 완벽한 행복은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벤은 배 속에서부터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마처럼 세상으로 뛰쳐나오려고 몸부림친다. 결국 열 달을 기다리지 못하고 태어난 벤은 괴이하고 난폭한 작은 괴물이다. 한 살도 안 된 벤은 온갖 폭력을 휘둘러 가족들을 공포에 떨게 한다. 벤에게서 가족과 어떤 교감도 기대할 수 없다고 생각한 부부는 벤을 요양소로 보낸다. 벤을 버림으로써 가족 모두를 얻기 위한 최선의 선택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그 시간은 오래가지 못한다. 해리엇은 가족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엄마라는 이유로 다시 벤을 데려온다. 벤의 등장은 온가족을 다시 두려움에 빠지게 했고, 결국 뿔뿔이 흩어지게 만든다. 오직 해리엇만 남아 벤의 엄마로만 살기로 작정한다.
모성애의 지극함이 벤을 네 아이와 같이 평범한 인간으로 돌아오게 했다면 이 소설은 쓰이지 않았을 것이다. 여전히 벤은 그 안에 넘치는 힘으로 살기를 띠고, 우리가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삶의 과정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녀는 그를 통하여 인간성(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던 간에)이 무대를 차지하기 수천만 년 전에 정점에 도달했던 종족을 바라보고 있다고 느꼈다. 벤의 종족은 위 쪽 땅 위에서는 빙하시대가 진행되는 동안 땅속 동굴 속에 살면서 어두운 심연의 강물로부터 생선을 먹거나 냉혹한 눈 위로 몰래 나가 곰이나 새를 잡았을까? 어쩌다 그들의 씨가 여기 저기 인간의 모체에 남겨졌다가 벤처럼 다시 나타나는 것일까?"(176쪽)
해리엇은 벤이 자기와 같은 종족을 찾으려고 뭉툭한 눈을 희번덕거린다고 생각한다. 해리엇의 마음이 헤아려질 땐 엄마인 그녀가 안타까워 책을 덮을 수가 없다. 오늘날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고 말하는 수많은 사건과 비상식적인 일을 저지르는 사람들도 어쩌면 벤처럼 그들의 세상을 뛰어넘어 오늘로 온 것은 아닌지……. 그들을 보고 고개 젓는 우리의 판단이 사실은 오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벤이 자기 세상에 안착하지 못하고 이 세상에 와서 포악한 괴물로 대접받는 것이라면 우리는 어떻게 그를 대해야 할까? 작가도 독자도 고민에 빠지는 부분이다.
익숙한 모자 관계를 벗어난 해리엇의 아픔과 벤의 충격은 생각보다 여운이 깊다. 벤과 해리엇의 불완전한 행복이 어떻게, 얼마나 지속될지 다른 독자들과도 이야기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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