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을 세계사 차원에서 평가하자"
세계에서 독립운동을 펼친 나라가 얼마나 될까. 이는 바보스러운 질문이다. 너무 많아서 헤아리기 힘들기 때문이다.
서유럽에서 시작된 제국주의 국가의 침략 물결 앞에 세계 대부분은 식민지가 되고 고통의 시간을 보냈다. 침략자의 발견과 진출은 식민지에게는 좌절과 고통으로 다가섰다.
한국은 아일랜드와 함께 바로 옆 나라의 침략과 혹독한 통치를 받으면서도, 가장 강한 투쟁을 보여준 대표적인 나라다. 한국의 독립운동은 세계 식민지해방투쟁사 차원에서 따져봐야 그 성격이 뚜렷해지고, 곧 100주년을 맞는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역사도 그렇다.
3·1운동은 1894년 안동의병에서 시작해 1945년 광복까지 펼쳐진 한국 독립운동 51년사의 중간지점에 놓여 있다. 전반기 25년은 군주국가를 지탱하려는 의병전쟁(보수)과 공화주의 국가를 세우려는 계몽운동(진보)으로 나뉘어 전개되다가 3·1운동에서 합류하면서 대한민국을 탄생시켰다.
후반기 25년은 기존 민족주의(보수)에다가 새로운 사회주의(진보)가 자리를 잡으면서 다시 두 줄기를 형성했다. 이것이 하나로 합류한 첫 걸음이 1926년 6·10만세운동이요, 민족유일당운동이며, 1927년 신간회운동으로 나아갔다. 따라서 3·1운동은 한국 독립운동의 중간점이자 전환점이었다.
3·1운동은 한국사에서 최초로 근대국가와 민주공화제를 이룩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받는다. 온 겨레가 일어나 '조선이 독립국'임을 선언했고, 그 독립국을 군주국가인 대한제국이 아닌 시민이 주권을 가지는 '대한민국'으로 탄생시켰기 때문이다.
1919년 4월 11일 채택한 제헌헌법인 '대한민국 임시헌장' 제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이라고 천명했고, 오늘의 헌법으로 계승되고 있다.
세계사 차원에서 보면, 3·1운동은 제국주의 침략 물결을 되돌리려는 투쟁의 선두 주자였다. 비록 제국주의 열강 가운데 승전국이 판을 폈던 파리 강화회의였지만, 여기에 식민지 해방 문제를 다루도록 요구하고 나선 것이 3·1운동이었다.
아르메니아와 인도를 비롯한 세계 수많은 식민지 대표들이 회의장 바깥에서 독립을 요구하였지만, 한국만큼 전 민족이 한 목소리로 독립을 선언하지는 못했다.
3·1운동은 일본제국주의에 맞선 저항만이 아니라, 세계 제국주의 열강에 대한 도전이기도 했다. 따라서 이러한 투쟁은 제국주의 국가의 침략과 통치에 직면한 나라에게는 귀감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중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3·1운동 소식을 크게 보도하고 투쟁대열에 나선 이유도 거기에 있다.
3·1운동으로 한국사 최초의 민주공화국, 곧 국민이 주인되는 시민사회요 근대국가를 세웠다. 이는 독립운동으로 근대국가를 이룩했다는 뜻으로 '독립운동 근대국가 건설론'으로 정리된다.
세계 식민지 역사에서 독립운동으로 근대국가를 이룩한 사례를 찾기란 쉽지 않다. 열강들이 시민혁명을 통해 이룩한 근대사회를, 한국은 독립운동을 통해 이룩한 것이다. 달리 표현하면 3·1운동은 곧 시민혁명이다.
김희곤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장(안동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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